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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에 대한 소회(所懷)-2

우리는 모두 늙고 병들며 그 끝엔 죽음이 기다린다. 이렇듯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은 단지 "자연의 법칙"일 뿐, 특정 인간에게 예외가 있거나 특별히 배려하지도 않는다. 자연의 법칙은 그저 무심(無心)하게 흘러갈 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는 길"에 들어서는 순간, 깊은 소외감과 박탈감으로 공허(空虛)함을 느낀다. 또한 그 길에는 어김없이 외로움과 그리움이 뒤따른다. 그래서 노인의 마음은 항상 서럽고, 서글프다. 태어나서 대략 30세가 될 때까지 인간의 생물학적 생태(生態)는 개인적인 격차 없이 정확하게 변화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의 노화 과정은 유전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나이임에도 더 늙고 덜 늙는 차이가 생긴다.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

늙음에 대한 소회(所懷)-1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피고 또 지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화려하게 푸르렀던 청춘의 세월들이 폭풍처럼 지나가나 싶더니, 어느새 삶의 마지막 문턱에 와 있는 80'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허허∼, 어쩌다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그 순간, 가슴을 옥죄는 통증과 함께, 몰려드는 깊은 울림에 가슴이 뻐근해진다. 그 울림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어찌 넘을까 하는 두려움, 지나온 삶에 대한 한없는 회한,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앞으로의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까 하는, 차마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수많은 상념(想念)들의 울림일 것이다. 허무(虛無)가 존재(存在)의 조건인 것처럼, 죽음은 삶을 삶 답게 하는 귀중한 전제(前提)가 될 것이지만, 그러나 삶..

국가 지도자의 자격

노자는 도덕경에서 최고의 지도자는 "하지유지(下知有之)"라 했다, 즉 "이런 지도자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의 사실만을 느끼게 하는 그런 인물이 참 지도자라는 것이다. 지도자인 그 사람에 대해 국민들이 별로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지도자 자신은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에게 부여된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지도자의 도리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혼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여 다행히 성과가 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 그것이 참 지도자의 자세라는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존재이유가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최상의 지도자는 단지 그 조직의 평범한 일원으로서 행동할 뿐, "있는 듯, 없는 듯" 편하고 자..

선거(選擧)와 권력(權力)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며, 절대권력에 의한 절대부패는 세상을 악의 온상으로 바꾼다. 물론 권력 자체는 악(惡)한 것도, 선(善)한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권력은 악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부패하기 쉬운 악한 사람이 권력에 쉽게 이끌리게 마련이며, 그런 사람이 권력을 잡는데도 능통하다. 요즈음 대선(大選)과 지방 선거로 세상이 한참 떠들썩 하다. 승자는 기고만장해지고, 패자는 비열 해진다. 승자 패자 모두 인간 본연의 속물적 인간으로 전락한다. 선거(選擧)에서 한자 “선(選)”은 제사(祭祀)에 쓸 재물을 고른다는 뜻이다. 따라서 선거는 제사상에 올릴 재물을 고르는 것처럼, 국민을 위해 희생할 사람을 고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국민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충분히 되어있는 일꾼을 국민의..

일조의 추억, 취흥여행(醉興旅行)-8

술은 무조건 몸에 좋지 않은 것인가? 음주는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는 통념은 과연 옳은 것인가? 특히 의학계(醫學界)에서는 음주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한의학(韓醫學)에서 술을 약으로 쓰는 경우는 허다하다. 의학(醫學)에서 의(醫)라는 말 밑 부분에 있는 유(酉)가 술을 의미한다. 즉 술이 병을 치료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뜻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술은 성질이 매우 뜨겁고, 모든 경락(經絡)을 원활이 운행 시켜 약 기운을 온몸에 퍼지게 하며, 온갖 나쁘고 독한 기운을 없앨 뿐만 아니라, 혈맥(血脈)을 통하게 하고, 위장(胃腸)을 두텁게 하며, 피부를 윤기 있게 하고, 우울한 기분을 없애며, 흉금을 털어놓고 마음껏 이야기하게 한다고 했다. 따라서 외부의 차가운 기운을 이겨내게 하거나, 공기가..

일조의 추억 2022.02.18

일조의 추억, 취흥여행(醉興旅行)-7

우리나라에 처음 술이 생긴 것은 언제쯤일까? 추정하건 대, 고대의 술은 발효주(醱酵酒)가 원천을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술이 사용된 것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 한민족이 고조선(古朝鮮)시대 이전부터 중국 등 주변국들보다 앞서 발효(醱酵)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술이 처음 사용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단군(檀君) 제사를 모실 때 햅쌀로 만든 신농주(神農酒)를 올렸다”는 기록에서 처음 확인할 수 있다. 그 이후 삼국시대에도 제사나 농사일에 어김없이 술이 등장했고, 특히 고려시대에는 궁궐 내에 술 공급을 담당하는 "양온서(良醞署)"라는 관청이 있었고, 고려 성종 때는 수도인 송도(松都)에 나라에서 개설한 6개의 공..

일조의 추억 2022.02.04

일조의 추억, 취흥여행(醉興旅行)-6

여러 기록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취흥의 풍류를 유별나게 사랑했던 듯싶다. 기쁠 땐 흥을 돋워주고, 슬플 땐 조용히 위로가 되어주었던 술. 그렇게 우리는 술과 많은 추억을 함께했던 민족이었고, 이런 조상 덕에 술을 즐겨온 나 자신도 술로 인한 부끄러움을 털어내며, 그런 한민족의 일원임을 자부하며 살아오고 있다. 한국 역사에서 술 이야기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구려를 세운 주몽(동명왕)신화로,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가 능신 연못가 수궁에서 유화라는 여자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 주몽(朱蒙)을 낳았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물론 설화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의 술 내력도 그 만큼 오래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청주와 막걸리를 주로 마셨다. 귀족은 청주를 마셨고, 일반 백성들은 막..

일조의 추억 2022.01.24

일조의 추억, 취흥여행(醉興旅行)-5

“화향백리(花香白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사설(辭說)이 전해지고 있다. “꽃(花) 향기는 백리를 가지만, 술(酒)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人)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뜻이다. 꽃향기보다는 술향기나 사람 향기가 더욱 정겹고 그윽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바람 따라 향기를 풍기는 화향(花香)은 그저 꽃 향기일 뿐이지만, 주향(酒香)은 함께 한 주우(酒友)의 마음 속을 오고 가며 정취를 더하고, 인향(人香)은 넓고 깊은 사람의 품 속으로 한없이 파고들며 그 사람의 심향(心香)을 서로 나눈다는 의미다. 더욱이 술자리에서 주향과 인향이 합쳐져,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중국 남북조 시대에 송계아(宋季雅)란 사람이 좋은 사람들과 맺은 인연을 소중하고 아..

일조의 추억 2022.01.10

논어 제6화-다스림의 원칙

【자왈(子曰) 도지이정(道之以政)하고 제지이형(齊之以刑)이면 민면이무치(民免而無恥)니라, 도지이덕(道之以德)하고 제지이례(齊之以禮)면 유치차격(有恥且格)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백성들을 이끌되 법률(政)로써 하고, 백성들을 따르게 하되 형벌(刑)로써 하면 백성들은 형벌을 면하기는 하지만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백성들을 이끌되 덕(德)으로써 하며, 백성들을 한결같이 따르게 하되 예(禮)로써 하면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알고 선(善)에 이를 것이다.”) 정치의 목적은 백성들이 잘 살수 있도록 위민정치(爲民政治)를 펼쳐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를 빙자하여 부정하고 불공평한 정책을 펼친다면 백성은 위정자(爲政者-정치를 하는 사람)를 기피하고 불신하게 되어 나라의 정책에 반발할 것이며, 사회는 혼란에 ..

일조의 추억, 취흥여행(醉興旅行)-4

처음 직장생활에서 맞닥뜨린 술자리는 그야말로 업무의 연장과 다름없었다. 상사의 자랑 섞인 경험담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강제로 술을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늦은 과음으로 다음날 아침 출근시간에 지각을 하거나 결근을 하는 경우는 전혀 용납되지 않았다. 업무처리를 잘못하는 것은 용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술 때문에 지각하는 일은 절대로 용서가 되지 않는 그런 시대였다. 많은 남성들이 회사 제일주의를 사명감으로 여기도록 강요받던 당시의 회사 분위기로 인해 가정은 항상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고, 야간의 주석(酒席) 풍조에 익숙해진 탓에 밤 늦게 귀가하고 새벽에 출근하다 보니, 아내는 물론 자식들을 맨 정신으로 대할 시간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제대로 가정을 돌보지 못했던 일상이 ..

일조의 추억 2021.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