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의 추억

일조의 추억, 취흥여행(醉興旅行)-4

추동 2021. 12. 21. 15:04

 

처음 직장생활에서 맞닥뜨린 술자리는 그야말로 업무의 연장과 다름없었다. 상사의 자랑 섞인 경험담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강제로 술을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늦은 과음으로 다음날 아침 출근시간에 지각을 하거나 결근을 하는 경우는 전혀 용납되지 않았다. 업무처리를 잘못하는 것은 용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술 때문에 지각하는 일은 절대로 용서가 되지 않는 그런 시대였다.

 

많은 남성들이 회사 제일주의를 사명감으로 여기도록 강요받던 당시의 회사 분위기로 인해 가정은 항상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고, 야간의 주석(酒席) 풍조에 익숙해진 탓에 밤 늦게 귀가하고 새벽에 출근하다 보니, 아내는 물론 자식들을 맨 정신으로 대할 시간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제대로 가정을 돌보지 못했던 일상이 평생의 후회와 약점으로 남아, 노년에 와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 한마디 못하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눈치 꾸러기 신세가 되는 원인이 되었다.

 

노년에 이른 많은 주객(酒客)들은, 자신의 술 행로의 발로(發露)가 직장의 짙은 술 풍토가 원인이었다고 실토한다. 아마도 직장의 오너나 유력자의 술 취향(趣向)이 직장 전체의 술 풍토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장병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키고, 군대 내 각종 소식을 기사로 쓰거나 방송을 통해 홍보활동을 하며 정훈장교로서 군생활을 마친 나는, 두가지 진로를 두고 고민해야만 했다. 당시 정훈장교 출신에게 채용 혜택을 주던 M방송사와, 유망기업으로 평가되던 A화장품 회사 중 선택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50여년 전이었던 당시 나의 선택은 부친의 영향이 결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고루하시던 부친의 의견은 방송사나 신문사의 분위기가 다분히 정상적인 인간미를 해칠 수 있다는 견해(?)를 강력히 피력하셨고, 나는 A화장품 회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방송사이건, 화장품 회사이건 간에, 양쪽이 모두 술 풍토가 강력했던 직장들이었던  지라, 어차피 내가 술꾼의 대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운명이거나 팔자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A사에 입사한 나는 첫날부터 선배들의 술 훈련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군 생활 시절 익혔던 음주실력 때문에 쉽게 회사의 밤 문화에 적응할 수 있었다. 정해져 있지 않은 퇴근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회사 근처 술집으로 모이도록 회람이 돌려졌고, 그곳에서 술잔을 돌리며, 각종 업무 훈련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