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의 추억

일조의 추억, 취흥여행(醉興旅行)-6

추동 2022. 1. 24. 13:46

송강 정철의 담양 송강정

 

여러 기록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취흥의 풍류를 유별나게 사랑했던 듯싶다. 기쁠 땐 흥을 돋워주고, 슬플 땐 조용히 위로가 되어주었던 술. 그렇게 우리는 술과 많은 추억을 함께했던 민족이었고, 이런 조상 덕에 술을 즐겨온 나 자신도 술로 인한 부끄러움을 털어내며, 그런 한민족의 일원임을 자부하며 살아오고 있다.

 

한국 역사에서 술 이야기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구려를 세운 주몽(동명왕)신화로,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가 능신 연못가 수궁에서 유화라는 여자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 주몽(朱蒙)을 낳았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물론 설화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의 술 내력도 그 만큼 오래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청주와 막걸리를 주로 마셨다. 귀족은 청주를 마셨고, 일반 백성들은 막걸리를 마셨다.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소주 같이 센 술은 없었지만, 우리 조상들이 소주를 알게 된 것은 몽골의 영향으로 고려 말 몽골의 지배를 받으며, 이들이 먹던 소주가 고려에 소개되면서 한반도 북녘에서 마시기 시작했다.

 

수확 시기에 맞춰 햅쌀로 술을 빚고 보름달을 보며 함께 나누며 즐겼다는 신도주(新稻酒), 추운 산속 생활을 견디기 위한 사찰의 곡차, 술의 색을 맑게 하려고 12간지의 돼지날에 빚기 시작했다는 삼해주(三亥酒), 반대로 진한 술을 얻기 위해 말의 날에 빚었다는 삼오주(三午酒), 술 맛을 보니 입 속에 푸른 파도가 치는 듯하다는 녹파주(綠波酒), 향이 지극히 좋아 마시는 것이 아깝다는 석탄주(惜呑酒) 등의 어원만 보더라도, 삶 속에서 맛을 찾고, 풍류를 즐겼던 우리만의 술 역사가 얼마나 특별한 지가 느껴진다.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는 고려시대 최고 애주가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는 연 잎에 술을 담아 마시며, 자연과 함께 술을 즐겼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을 술에 빗대어 표현하며 술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조선 선조대의 가사 문학의 대가였던 송강 정철(鄭澈) 역시 한국역사의 대표적인 애주가로 불리고 있다. 그가 남긴 술의 시조만 해도 20여 수 나 되고, 그의 대표작인 '관동별곡(關東別曲)'이나 '사미인곡(思美人曲)'에서도 술과 자연을 함께 즐기는 표현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근대에 이르러서는 주도(酒道)의 명인들인 시인 변영로(卞榮魯),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성재(誠齋) 이관구(李寬求), 횡보(橫步) 염상섭(廉尙燮) 등이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술 실력을 뽐내며 개화기 한국의 문화·예술을 이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