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버린 임금−3 사현을 넘어 홍제원(弘濟院)에 다다르니 날이 새는지 동녘이 희뿌옇게 밝아온다. 경기감사 권징(權徵)이 쫓아와 임금 뒤에서 우산을 받치고 따라 나선다. 이제는 날이 밝아 일행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임금을 비롯하여 대신들은 모두 물에 빠진 생쥐 모양이 되었고, 뒤에서 따라오는 궁녀들도 비에 젖은 치마 저고리가 몸에 착 달라붙어 마치 나신처럼 맨몸이 드러났다. 정황 중에도 젊은 승지들은 그 모습을 놓칠 세라 정신없이 눈동자를 번뜩였다. 궁녀들이 치마를 걷어 올리고 따라갈 때 흰 속살이 유난히 눈길을 끌기도 했다. 비는 여전히 쏟아졌고 작은 개울도 물이 불어 모두 큰 내를 이루었다.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길라잡이는 얕은 곳을 찾느라 어지간히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느덧 벽제관(碧蹄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