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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3

(제1부) 전쟁의 시작−1 조선반도가 어수선하다. 샛바람을 타고 동녘의 바다 건너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침공이 임박한 것인가? 전쟁은 항상 침략자의 일방적 선언과 힘으로 시작되지만, 그러나 적군과 아군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은 뒤에야 끝난다. 이것이 변하지 않는 전쟁의 원리다. 전쟁을 앞둔 조선의 정황은 어떠한가? 조선 14대 임금 선조(宣祖)가 갑작스레 임금에 오르더니 선대 명종(明宗) 때, 윤원형(尹元衡)과 정난정(鄭蘭貞) 일파가 저질러 놓은 추악한 병패들이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중 가장 기막힐 노릇은 군역제도가 썩을 대로 썩어 군대가 거의 붕괴되었다는 사실이다. 병사가 없어 한 나라의 국경선이 무풍지대로 방치되고 있었으니 전쟁을 부르..

역사소설 연재 2023.08.14

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2

프롤로그(prologue)-2 전쟁에는 생명의 존엄이나 인도적 구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침략자의 무차별적 살상과 살아남기 위한 굴종이 난무할 뿐이다. 그러나, 전쟁터에는 파멸을 자행하는 악령만 날뛰는 건 아니다. 그곳 들판에는 병사의 발길에 무참히 짓밟히면서도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가녀린 들꽃들이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전쟁을 압도하는 건 들꽃만 있는 게 아니다. 전쟁의 각박한 참화 속에서도 젊음의 기운들이 꿈틀대며, 보이지 않는 연심(戀心)의 끈은 줄기차게 이어지며 불꽃을 일으킨다. 마치 생존을 잊은 미망의 존재들처럼. 망령의 땅 전쟁터에는 이렇듯 온기를 잃지 않는 꽃 바람과 애틋한 사랑의 유희가 서로 어우러지며 전쟁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전쟁은 모든..

역사소설 연재 2023.08.06

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1

※신작 『사랑의 요소(要素)』를 매주 1회씩 연재하려 한다. 노년을 거쳐 이제 산수(傘壽)의 벽에 걸쳐 있으니, 돌처럼 굳어져 버린 감성과 사고력, 딱딱해진 필력으로, 어찌 복잡미묘한 사랑이야기를 풀어나갈까 사뭇 망설여 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망종(亡終)의 허우적거림에서 벗어나려 한다. 많은 채찍과 힐난(詰難)을 기다린다. 프롤로그(prologue)-1 「탐욕은 전쟁을 불러오고 총칼은 파멸을 초래한다.」 1592년, 선조(宣祖) 임금의 재위 25년째인 임진년(壬辰年) 4월 13일 새벽. 20만의 일본 왜병들이 일시에 조선을 침공해왔다. 한반도와 중국을 정벌하여 섬나라 일본을 광대한 대륙국가로 개창하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탐욕이 마침내 총칼을 앞세운 살육 전쟁으로 치달은 것이다. 침략자는..

역사소설 연재 2023.08.02

노인의 글쓰기

우리나라는 2000년에 이미 고령화사회로 진입했고, 앞으로 4년 후인 2026년에는 고령사회를 거쳐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될 전망이다. 이렇게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가 되면, 경제활동 가능 인구가 줄어들면서 국가의 경쟁력이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노인 개개인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노화로 인해 생기는 신체적 정신적 감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인지능력(認知能力) 저하로 인해 지각(知覺), 주의력(注意力), 집중력(集中力), 이해력(理解力), 그리고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장애를 겪는 현상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노화는 누구나 예외 없이 겪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자포자기에 빠질 수만은 없는 일이기에 이러한 신체적 정..

노인의 업보(業報)

나이 들어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가 되면, 노인들은 스스로 참회록의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세계 최빈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정은 뒷전으로 밀어 놓은 채, 온몸을 내던지며 산업화 전선의 선봉에 섰던 대부분의 노인들은 이제와 새삼 당시의 자랑스러웠던 자신의 행보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자괴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괴로워한다. 앞만 보고 뛰었던 역동의 시기에 혹여 자만에 빠진 채, 가족과 지인들에게 상처만을 남기지 않았나 하여 깊은 회한에 빠지게 된다. 오점뿐인 인생 행로에 이제 남은 건 노쇠해져 볼품없는 육체뿐이니, 이러한 시대적 죄업은 오로지 나홀로 짊어져야 할 나만의 멍에란 말인가? 성현의 말씀에, 인간에게는 누구나 벗어날 수 없는 근원적 원죄가 있다고 한다. 인간들은 태생적으로..

노인의 침묵(沈默)

쇠락해진 노인의 가슴 속에도, 그리움의 잔상(殘像)은 지워질 수 없는 모양이다. 노인들은 석양이 질 무렵이면,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망연(茫然)히 먼 하늘을 응시하며 서성이는 경우도 곧잘 일어난다. 그럴 때면, 가슴 속 깊은 곳에 자상(刺傷)처럼 박혀 있는 부모님의 얼굴, 홀연히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반려자의 체온, 그리고 어린 시절의 옛 친구들과 고락을 나누던 동료들이 보고 싶어 비감(悲感)에 젖기도 한다. 그리움의 멍울은 외로움이 되어 상흔으로 남고, 외로움이 깊어지면 점차 말문을 잃게 되어 침묵(沈默)의 세상으로 가라앉고 만다. 노인의 침묵은 묵언(默言)의 수행인가, 아니면 현실 도피인가? 노인의 침묵을, 조용한 삶에 안주(安住)하려는 노인 특유의 생존방식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

늙음의 순리(順理)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나, 늙고, 병고에 시달리다, 죽음에 이르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단계를 밟는다. 결국 늙음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생태적 현상이다. 죽음이란 나와 관련된 모든 것과 결별해야 하는 과정이다. 무(無)로 돌아가는 종착지라 할 수 있다. 조문을 하는 자리에서 "고인께서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는 말을 듣곤 하지만, 편안한 죽음은 존재하기 어렵다. 포기는 안타깝고, 이별은 서글프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의 순리를 미리 예견하고 서서히 준비한다면, 포기와 이별의 아픔을 참아내며 잊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늙음의 순리(順理)란 무엇인가? 늙음은 결국 자연으로의 회귀(回歸)를 의미한다. 생명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흙에서 생성되었다가, 삶이라는 짧은 여정(旅程)을 마치고 자연 속 발아지점인 흙으..

노인의 감정(感情) 변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람직한 노인상(老人相)은, 인자함과 너그러움을 지닌 따뜻한 모습의 노인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노인들은 버려야할 폐습(弊習)을 버리지 못해 풍모가 손상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감정흐름을 통제하지 못하고 왜곡하는 습성 때문이다. 살아온 연륜이 오래된 만큼 감정을 통제하는 솜씨도 익숙해질 법한데, 실제로는 이를 억제하지 못해 아픔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온갖 풍파를 거치며 한없이 빈약해진 노인들의 가슴에는 아직도 사랑과 증오, 열정과 좌절,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선(感情線)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런 탓인지 때로는 억눌리다가 때로는 폭주하며 감정의 변화가 조석변개(朝夕變改)한다. 너그러움 보다는 노여움이 앞서고, 섭섭함이 가득하며, 방어논리 때문인지 노인 특유의 외고집을 부..

늙음에 대한 소회-취미활동

나이 탓에, 갑자기 직장활동을 접으면서 생겨난 일화(逸話)가 생각난다. 산더미 같은 업무 속에 파묻혀 지내야 했던 일상이 퇴직과 함께 중단되면서, 하릴없는 여유시간이 부쩍 늘어났으니, 이를 어찌 보내나 하며 막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오로지 직장 일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엄격한 분위기 탓에, 취미활동이나 여가선용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시절∼∼. 당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가 무언지 알 까닭이 없었고, 따라서 남아도는 여유시간을 때우느라 "방황하는 노인"들이 이곳저곳에서 양산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은퇴 전 자신이 종사하던 분야에서 뜨겁게 전성기(全盛期)를 보내던 시절을 잊지 못한다. 당시, 우리들은 무대 위에서 뜨거운 조명을 받으며, 사회활동의 주인공으로서..

늙음에 대한 소회-인간관계

가는 길(往路)이 있으면 돌아오는 길(回路)도 있게 마련이다. 가다가 싫으면 되돌아올 수 있고, 옆길(側路)로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은 한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불귀지로(不歸之路)의 여정이다. 그 길이 바로 인생길이다. 만약 우리네 인생길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사람들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인간관계의 재정립"이 아닐까 싶다. 나이 들어 지난 세월을 뒤돌아볼 때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수없이 이루어졌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회한"이 가장 컸기 때문일 것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희로애락을 나누는 인간관계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대화하고 다투며 정(情)을 나누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b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