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연재

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2

추동 2023. 8. 6. 09:10

프롤로그(prologue)-2

 

전쟁에는 생명의 존엄이나 인도적 구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침략자의 무차별적 살상과 살아남기 위한 굴종이 난무할 뿐이다.

그러나, 전쟁터에는 파멸을 자행하는 악령만 날뛰는 건 아니다.

그곳 들판에는 병사의 발길에 무참히 짓밟히면서도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가녀린 들꽃들이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전쟁을 압도하는 건 들꽃만 있는 게 아니다.

전쟁의 각박한 참화 속에서도 젊음의 기운들이 꿈틀대며,

보이지 않는 연심(戀心)의 끈은 줄기차게 이어지며 불꽃을 일으킨다.

마치 생존을 잊은 미망의 존재들처럼.

 

망령의 땅 전쟁터에는 이렇듯 온기를 잃지 않는 꽃 바람과

애틋한 사랑의 유희가 서로 어우러지며 전쟁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전쟁은 모든 걸 파괴하겠다고 난동을 부리지만, 위대한 자연의 위력과 오묘한 사랑의 열정은 전쟁의 악행을 단호하게 제압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는 달천(疸川)이 흐르고 뒤로는 견문산이 감싸고 있는 평화로운 작은 마을.

이곳에서 억제된, 그러나 호기로운 사랑의 역사가 시작된다.

뭇남성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젊은 과수댁과 영롱한 눈매를 지닌 그녀의 어린 딸이 함께 살고 있는 이곳바람 소리마저 정지된 듯, 먹먹하기만 하던 이곳 오지마을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일본의 침략전쟁인 임진왜란이 마침내 이곳 산수마을로 들이닥치면서 순박했던 마을이 갑자기

격전과 패전의 기착점으로 변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