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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산책(儒家散策)을 시작하면서

세상이 한없이 험난해지고 있어 두려움이 앞선다. 지나친 물질탐욕(物質貪慾)으로 인성(人性)은 피폐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고, 삶의 기본적 도리(道理)조차 실종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는 신뢰(信賴)와 인정(人情)이 메마를 대로 메말라 온기(溫氣)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사람이 무섭고 세상이 무서워진다. 나라를 이롭게 하고, 국민을 복되게 이끌어야 할 정치인(政治人)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거짓과 술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지나치게 법치주의(法治主義)에 빠진 사회의 기본 질서(秩序)는 자발적인 건전성(健全性)을 잃은 채, 불신과 적대감이 만연하여 누구나 정신병적 각박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고만장(氣高萬丈)한 인간들 앞에 커다란 재앙(災殃)이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 두려움을 떨칠..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45

어린 나이임에도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고 대덕산을 오르내리며 학업에 열중하는 딸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복돌은, 설화의 학구열을 대견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잔한 생각이 들어 마음이 뭉클해진다. 힘이 넘치는 장정들도 다니기 어려운 험한 산길을, 아이는 땀 투성이가 되어 오르내리면서도,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서당엘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 “설화야! 산길 오르내리는 게 많이 힘들 텐데––, 괜찮은 것이냐?” “아니, 괜찮아요. 중국말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횐데 견뎌내야죠. 그리고 제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야 엄니처럼 저도 이담에 여류상인으로 우뚝 설 수 있지 않겠어요?” 복돌은 순간 딸 아이가 남몰래 앓고 있는 심통(心痛)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아차 하며 가슴을 친다. 복돌은 경성 ..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44

이즈음, 정기적으로 장(場)이 벌어지던 회령(會寧)과 경원(慶源)의 무역소(貿易所)가 갑자기 폐쇄되더니 여진과의 국경무역이 전면적으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고, 급기야 조선반도에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한반도가 폐허의 땅으로 전락했던 때가 불과 30년이 안되었건만, 끔찍한 전쟁이 다시 벌어졌고, 주민들은 왜란 때의 참상을 떠올리며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명(明)나라를 정복하려는 후금(後金ㆍ여진)이 조선의 명나라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정묘호란(丁卯胡亂)을 일으킨 것이다. 한양(漢陽)에는 반정(反正)이 일어나 나라님이 바뀌었고, 임금에 오른 인조(仁祖)는 북방외교에 있어 전임 광해군(光海君)과 달리 고집스럽게 친명배금(親明拜金) 노선을 주창하고 있었다..

일조의 우언(迂言)-(제2화)

● 세대 갈등에 대해서 고령화 시대가 급격히 도래하면서 세대 간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세대 갈등이 극심해지고 있다. 세대별 구분은 ①사일런트 세대(1945년생 이전) ②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 ③X세대(1965~1980년생) ④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 ⑤Z세대(1997년생 이후)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6·25전쟁이 끝난 뒤 태어난 세대를 뜻한다. 부모님에게 무조건 순종했던 마지막 세대로, 가족을 위해 밤새워 일했지만 자식들로부터 따돌림당하는 비운의 세대다. ‘X세대’는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했던 세대로 물질주의 세대라 일컫는다. 베이비부머와 X세대 사이에 ‘386세대’가 존재한다. 그들은 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 대학에 다니며 학생..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43

(제5부) 혈맥(血脈)의 내력 눈(雪)의 여인 설화(雪花)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눈은 하늘의 축복을 땅에 전해주는 천지신명(天地神明)의 전령사(傳令使) 같은 것이다. 눈은 청결하고 정직하여, 무욕(無慾)과 허심(虛心)을 의미한다. 눈은 순수함과 상서로움을 함께 지니고 있어, 더럽혀진 세상을 깨끗이 정화시켜 주기도 하지만, 또한 세상을 풍족하고 바르게 이끌어 주기도 하는 하늘이 보내준 은복(恩福)의 상징일 것이다. 비록 천덕꾸러기로 세상에 태어나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야 했지만, 그러나 설화(雪花)는 눈(雪)이 품고 있는 깊은 가연(佳緣)을 몸에 지닌 채, 눈과 함께 세상에 온 특별한 여인이었다. 그건 설화가 이 나라 조선 땅의 한 편을 풍요롭고 맑게 채색해줄 특별한 여인이 될 것이라는..

일조의 우언(迂言)-(제1화)

● 세월에 대하여 불교에서 겁(劫)은 잠자리 날개보다도 더 얇은 천으로 커다란 바위를 3년에 한 번씩 스쳐 그 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을 의미하니 결국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뜻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없이 짧기만 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짧다고 한탄할 뿐, 길다고 투정을 부리지는 않는다. 또한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며 나이 듦을 서글퍼 한다. 10대 때는 시속 10㎞이던 것이, 50대는 50㎞, 80대 때는 80㎞로 세월의 속도가 급속히 빨라진다 하며 안타까워한다. 청년기를 지나면서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든다 싶어 안도하는 순간, 빠른 속도로 세월이 흘러가버려 어느새 중년기를 거처, 노년기로 접어든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것이 인..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42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옥례의 몸에는 한 방울의 체액마저 고갈되며 절망의 나락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그 순간 뿌연 허공에서 홀연히 나타나 울음을 터트리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아가∙∙∙∙! 아가야∙∙∙∙! 내 아가야∙∙∙∙!” 하며 필사적으로 손을 뻗쳐 아이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때 난데없이 복돌이 나타나 원망스러운 눈길로 옥례를 노려보더니 갑자기 아이를 빼앗아 안고는 허공으로 멀어져 간다. 아이는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트리며 발버둥친다. 옥례는 멀어져 가는 아기에게 손짓을 하며 “아가야~~! 아가야, 가지마∙∙∙∙! 내가 네 엄마야~~.” 라고 애타게 부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옥례의 눈에 비친 마지막 환영(幻影)이었다.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는..

소설 "끝없는 여정"-41

출발 셋째 날 저녁이 다 되어서야 함흥에 당도한 복돌은 외곽 약방과 시장을 돌면서 부지런히 약제를 납품하는 한편, 그 동안 궁금했던 함흥상단의 정황을 조심스럽게 파악하고 있었다. 한데, 뜻밖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함흥상단을 탈취하며 기세 등등하던 도방(都房) 최영섭은 알 수 없는 자객에 의해 횡사(橫死)를 당했고, 그와 결탁하여 함흥상단의 상권을 독점하려던 전 경성객주(鏡城客主) 이정홍(李貞洪)과 전 회령객주(會寧客主) 이원홍(李元洪) 두 형제는 최영섭 도방의 살인혐의를 받고 함경도 옥사에 구속된 상태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함흥상단 행수 등 그들의 추종 무리들은 모두 일망타진되어 대부분은 옥사에 갇히거나 아니면 외지로 뿔뿔이 흩어져 잠적해버린 상황이었다. 옥례를 핑계 삼아 대방을 죽이고 상단을..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40

눈이 많은 마을 눈골(雪村)은, 이십여 호의 마을 사람들에겐 작은 천국이다. 이곳은 낮이 늦게 시작되고 밤이 일찍 오는 탓에, 새벽부터 북적거리며 살아야 하는 도시 사람들의 일상(日常)을 반쯤 줄여 놓은 듯 유유자적하며 느리게 사는 생활공간이다. 게다가 마을사람 모두가 너그럽고 질박(質樸)한 품성을 지닌 탓에 작은 성취에도 큰 만족을 느끼는 무욕(無慾)의 자연공간이기도 하다. 가진 건 별로 없지만 서로 정(情)을 나누며 사는 곳––, 모두가 바둥대지 않고 느긋하여 여유로움을 느끼게 하는 곳––, 삶의 틈새로 끼어들기 십상인 사람간의 각축(角逐)과 질시(疾視)를 찾아보기 힘든 곳––, 읍내를 오르내리기엔 숨을 헐떡거려야 하는 험한 산골이지만, 살기엔 천국 같은 곳––, 그곳이 바로 산중마을 눈골(雪村)이다..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39

산남(山南) 약방에 머문 날짜가 벌써 두어 달 넘게 흘렀다. 옥례의 병세도 많이 호전되었고, 야위었던 풍모 또한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한때 장판을 뒤흔들며 맨몸으로 좌충우돌했던 여류 행수의 긴박한 무용담들––, 그녀가 처음 겪었던 경성(鏡城) 상권의 기억들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진한 흉터가 되어 가슴 한가운데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억제하기 어려웠던 절망과 분노의 감정들은 어느덧 숨이 잦아들면서 옛 이야기가 되어 서서히 가슴 속 밑바닥으로 내려앉기 시작한다. 김삼천 대방에 대한 얽히고 설켰던 상념들 또한––, 어차피 정으로 맺어졌던 인연은 아니었기에, 그와의 여러 복잡한 교합(交合)들 역시 세월의 흐름을 타고 서서히 멀어져 갈 것이다. 사람들 누구든, 갖고 있던 좋은 기억, 나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