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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조선시대 사랑과 성(性)

예나 지금이나 가장 흥미롭고 인간적인 이야기는 사랑이야기일 것이다. 사랑이란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소중히 여기는 정(情)을 말한다. 즉 이성인 상대에게 성적(性的)으로 이끌려 열병처럼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를 사랑이라 부른다.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하고, 왕의 자리까지 포기하는 것을 보면, 사랑은 가히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가치이며 위대한 행위임이 분명하다. 또한 인간의 문화 가운데서 ‘성(性)’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인간이 멸종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은 자손을 이어야 한다는 본능과 즐거움에 중심을 둔 쾌락으로 구분되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남녀가 눈이 맞아 결혼하는 이른바 연애결혼이 가능한 시대였다. 일반적으로 젊은 ..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22

눈골마을이 한창 분주해졌다. 개마고원에도 봄이 온 것이다. 겨우내 강추위를 견디며 잘 자라준 밀과 보리를 거둬들이는 건 물론이고, 함경도와 강원도의 객주집 객상(客商–객주가 운영하는 상점)과 여상(旅商)을 통해 약방으로 풀려나갈 버섯이며 약초를 채집하느라 마을사람 모두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눈골마을의 하루 일과는 동이 트기 전 칠흑 같은 새벽녘부터 시작된다. 촌장(村長) 어른이 두드리는 징 소리가 산중에 울려 퍼지면, 모두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전날 밤 마련해둔 밥 덩이를 어깨에 둘러메고는 횃불을 받쳐든 채, 마을 북편 광장(廣場)으로 모여든다. 혹여 조금이라도 지체를 했다 가는 마을 촌장이신 최씨(崔氏) 어른으로부터 호되게 치도곤(治盜棍)을 당하기 때문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서..

(제8화) 간통죄(姦通罪) 처벌의 역사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간통을 악행으로서 엄격히 처벌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간통죄는 2016년 1월부터 형법에서 삭제되면서 형벌로서 효력을 상실했다. 한동안 간통사건의 대부분이 공소 취하 혹은 집행유예 등으로 끝났고, 60.9%가 아내의 외도가 원인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여성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우리나라 간통죄의 역사는 고조선부터 시작되었다. 삼국지(三國志)의 동이전(東夷傳-한반도를 의미)에 의하면 남녀가 음란하면 모두 죽였으며, 투기하는 여자를 더욱 미워하여 죽인 뒤 나라의 남쪽 산 위에 버려 두어 썩게 했다. 백제는 간통한 여성을 노비로 삼았고, 고려시대에는 아내가 간통한 경우 남편은 상대 남자를 죽이고 처를 내쫓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대명률(大明律)의 규정에 따..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21

그러나 창분의 시름은 길지 않았다. 개마고원의 삶에 대해 그녀에게 후회는 없었다. 아니, 한(恨)도 많았지만, 흥(興)도 있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인연으로 이곳 고산준령까지 밀려들어오긴 했지만, 새 찬 웅풍(雄風)과 매서운 혹한(酷寒)을 몸에 익히며 나름 맹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생애 두 번째의 선택이 창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선택은 그녀의 것이 아닌, 딸아이 옥례를 위한 선택이어야 했다. 파고(波高)에 휩쓸린 편주(片舟) 신세였던 여인네, 창분––! 그녀의 몸에 잉태된 업보로, 준령험산의 산 처녀가 되어버린 딸아이 옥례––, 그리고 이 다음 옥례가 낳을 자녀와 이를 이을 후예들––. 그들을 산짐승들이나 노니는 개마고원의 토박이로 살게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제7화) 연애편지 쓰는 남자, 추사 김정희

일방적인 남성중심의 조선사회에서도, 부부간에 서로를 극진히 존중하고 다정하게 사랑을 표현한 부창부수의 부부가 더러 눈에 띈다. 엄격한 사회적 통념을 깨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며 애틋한 부부애를 나눈 남녀도 있었고, 아내와 사별하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한 사내도 있었다. 양성평등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부부 사랑을 나눈 조선시대 부부이야기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那將月姥訟冥司) 누가 월하노인께 호소하여 (來世夫妻易地爲) 내세에는 서로가 바꿔 태어나 (我死君生千里外) 천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 (使君知我此心悲) 나의 이 서러운 마음을 그대도 알게 했으면.” 추사 김정희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명필가이자 그림, 시와 문장, 고증학과 금석학, 차와 불교학 모든 분야에서 높은 경지..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20

“약재 장사도 이제는 더 이상 해먹기가 어려울 듯싶어요.” 이형석은 무슨 요량이라도 숨겨 놓은 듯, 우선 엄살부터 늘어놓는다. “한동안 함경도 땅에서는 웬만하면 우리 약재를 쓰지 않은 약방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다 옛날 예기가 될 판이네요. 요즘 전란 후유증으로 외상(外傷)환자 내상(內傷)환자 할 것 없이 병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어, 약국과 약재상이 제철을 만난 듯 한참 성황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뭐가 문제란 건가요? 약재상이 성업을 이루면 이씨 어른에게도 좋은 일 아닌가요?” 그는 현실을 이해 못하는 창분네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던지 목소리에 힘이 빠진다. “글쎄, 그렇게만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어요∙∙∙∙. 약재상이 제법 장사가 된다 싶으니까 여기저기 약재가게가 난립하고 있는데 다..

(제6화) 조선 태조 이성계의 편집적 사랑

어느 날, 이성계는 사냥을 하려고 말을 타고 황해도 곡산의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갈증을 느껴 말에서 내리게 되었다. 마침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는 아가씨가 있어 물을 달라고 청했는데, 그녀는 물을 한 바가지 떠서 그 위에 버들잎을 띄워 남자 에게 내밀었다. 사내가 뭐 하는 짓이냐고 화를 내자 여인은 웃으며 “물을 급하게 마시면 체할 수도 있으니 천천히 마시라는 뜻”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사내는 여인의 섬세한 배려에 탄복했고 그녀의 모습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얼마 후 이성계의 청혼으로 그들은 결혼에 이르게 된다. 이때 그녀는 16세의 처녀였고, 이성계는 그녀보다 21살이나 많은 37살이었다. 그녀가 바로 조선 창업임금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이며 조선왕조의 첫 번째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였다. 강씨는 고려 ..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19

살상의 땅에 내린 하늘의 죄업이던가? 조선의 산하는 조선의 모습이 아니었다. 미려했던 조선반도는 온통 찢기고 뭉개진 채 상처투성이의 폐허로 변해버렸고, 냉기뿐인 산촌(山村) 여기저기에는 창궐하는 질병에 허덕이는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에 시달리며 내뿜는 신음소리가 생(生)과 사(死)의 허공을 처연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구제해줄 손길은 아무데도 없었다. 병자(病者)는 여기저기 널려 있지만, 병을 고쳐줄 의원을 만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나 다름없었고, 그나마 어렵사리 의원을 만난다 손 치더라도 대부분의 의원들이 환자에게 내려줄 약방문 하나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약제를 잘못 쓰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그만큼 의원들의 의술이란 게 지극히 보잘것없었고, 거기다 제대로 된 의..

(제5화) 정조(正朝)의 어제의빈묘지명(御製宜嬪墓誌銘)

어제의빈묘지명(御製宜嬪墓誌銘) 呼在嬪妾而識道理如其賢也 '아아! 후궁으로 있으면서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을 알았으니 어질고 총명하여 성인(聖人)의 다음 가는 사람과 같았다. 居勞貴而守謹約宣其祿也 지체가 높고 귀한 자리에서 몸가짐과 언행을 조심하고 검소함을 지켰다. 絻喪文孝淚猶未乾而又與在腹之兒同歸化盡 이에 마땅히 복을 받아야 하는데 문효세자를 잃고 겨우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뱃속의 아이와 함께 잘못되어 세상을 떠나버렸다. 嬪之命其亦可哀之甚也 빈의 운명은 그것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심히 불쌍하고 슬프도다. 今將送嬪于文孝之側而葬之此固嬪之願 이제 장차 빈을 문효세자의 곁에 보내서 장례를 치르는데 이는 빈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耳玄隧密邇魂氣流通終天泣訣之恨永以爲慰 무덤이 아주 가까워졌으나 넋은 막힘..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18

(제3부) 사랑의 행방(行方)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훤칠한 미모의 여인, 옥례(玉禮)! 그녀는 두메산골 벽지에 묻혀 사는 한갓 시골 처녀에 불과하지만 외모가 빼어나게 돋보여 마치 깊은 산속에서 불현듯 내려온 선녀를 연상케 하는 여인이다. 어쩌다 그녀가 읍내 장터에라도 나타나는 날이면 많은 남정네들이 가던 길을 멈춰선 채 눈길을 보내느라 정신을 못 차린다. 전혀 윤색(潤色)되지 않은 건강미인이랄까, 아니면 자연미인이랄까∙∙∙∙. 얼굴은 청순하지만 몸매는 육감적이어서 어쩌면 차가움과 뜨거움을 동시에 발산하는 순진무구한 냉열미인(冷熱美人)이라 하는 게 맞을 것 같은 그런 여인이다. 당연히 그녀는 남심(男心)을 흔들어 놓는 그야말로 뇌쇄적 마력을 지닌 여인이다. 이런 천부(天賦)의 미모가 그녀의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