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87

(제4화) 송강(松江) 정철의 ‘영자미화(詠紫薇花)’

一園春色紫薇花(일원춘색자미화)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피니 纔看佳人勝玉釵(재간가인승옥채)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莫向長安樓上望(막향장안누상망)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 滿街爭是戀芳華(만가쟁시연방화) 거리의 사람들 모두 다 네 모습 사랑하여 다투리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이 ‘강아(江娥)’를 위해 지은 한시 ‘영자미화(詠紫薇花)’, 곧 “자미화(紫薇花)를 노래함”이란 한시(漢詩)이다. 자미화는 무려 100일 동안이나 핀다는 배롱나무, 즉 ‘목백일홍’을 말한다. 강아는 송강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남원의 어린 기생으로 본명은 자미(紫薇)였고, 불리는 이름은 ‘진옥(眞玉)’이었으나 정철의 호인 송강의 ‘강(江)’자를 따라 ‘강아’라고 불렸다. 송강은 강아를 ..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17

한편, 조선반도(朝鮮半島)의 정세는 급변하고 있었다. 전란을 겪으면서 폐허의 땅으로 변해가던 조선반도에 소생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명(明)나라의 지원군이 패색 짙은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한반도로 진주하면서, 상대적으로 일본군(日本軍)의 위세는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여송(李如松) 장군이 이끄는 명나라 지원군과 의기(意氣)를 되찾은 조선 관군(官軍) 및 의병(義兵)들이 연합군을 이뤄 총 공세를 펼친 끝에 잃었던 평양성(平壤城)을 탈환하는데 성공했고, 전황은 급변한다. 함경도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가 이끄는 일본 제3군은 퇴로가 차단될 것을 염려했던지 급하게 철군을 서둘러 한양을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고, 일시적으로 무주공산을 이룬 함경도는 한때 국경인(鞠景仁) 반..

세계명작 "주홍글씨"

1804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났다. 청교도의 사상,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많은 작품을 썼다. 1825년 보든 대학을 졸업한 후 12년간 칩거 생활을 하며 독서와 습작으로 시간을 보낸다. 30세 무렵 「로저 맬빈의 매장」, 「젊은 굿맨 브라운」 등의 소설들이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하지만 작품의 문학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수입은 얻지 못해 경제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스턴 세관에 취직하기도 했고 협동 농장에 들어가 살기도 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1850년 청교도주의가 지배하던 17세기 미국의 어두운 사회상을 그린 소설 「주홍 글씨」를 발표했다. 1864년 여행 중 60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주홍 글씨 'A'자는 Adultery(어덜터리)..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16

한식(漢植)을 잃고 한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던 창분은 아직 원기가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그야말로 강행군을 펼치며 산악을 헤매다 보니 그만 체력의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순종(順從) 여인에서 강철(强鐵) 여인으로 변신한 그녀는 산간벽지 눈골마을의 자력갱생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막무가내로 쏟았던 체력이 탈진되더니 지독한 몸살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심한 오한과 헛구역질을 견뎌야 했다. 문득 헛구역질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에 엄니가 하던 말이 떠올라 산에서 캐낸 생강과 칡뿌리 갈근을 다려서 며칠을 마셔보았지만, 별 효험이 없었다. 왜 그런 건가 의심을 품으며 이리저리 손가락 셈을 하다 보니 아니나다를까, 창분의 몸에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퍼뜩 뒤돌아보니 어쩐 일인지..

(제3화) 자규시(子規詩)와 단장가(斷腸歌)

●자규시(子規詩 = 소쩍새 시)---단종(端宗)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나는 한 마리 궁궐을 쫓겨난 원통한 새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짝지을 그림자도 없는 외로운 몸 산속을 떠도네 假眠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窮恨年年恨不窮 (궁한연년한불궁)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聲斷曉岑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두견새 울음소리 끊어진 새벽 어스름 달빛이 비치고 血流春谷落花紅 (혈류춘곡낙화홍) 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지는 꽃(두견화)만 붉구나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내 애끊는 소원 듣지 못하고 何乃愁人耳獨聰 (하내수인이독총) 슬픈 내 귀에 소쩍새 울음만 들리는 것이냐 ※소쩍새는 자규 외에도 두견, 망제혼, 귀촉도, 불..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15

가문비나무 밑에서 창분과 마을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부르짓고 있는 독자생존의 결의는 동토의 산하를 녹이기라도 하듯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창분은 마을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식량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 자신의 야심 찬 계획을 분명하게 설명한다. 비록 그녀의 목소리는 힘이 부친 듯 나직하고 여리게 들렸지만, 그러나 그녀의 말은 단호하고 절박했으며, 지금은 더 이상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점을 마을사람들에게 결연한 의지로 각인시키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식량확보를 위한 전쟁 선포였고, 농사일정과 작업목표를 하달하는 작전명령이었으며, 이 작전에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용인할 수 없다는 마을 규약의 선포였다. 전쟁을 치르는 비장한 각오가 아니고서는, 눈골 마을사람 모두가 이곳 험산에서 살아남는..

(제2화)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한 황조가(黃鳥歌)

翩翩黃鳥 (편편황조) 펄펄 나는 저 꾀꼬리는 雌雄相依 (자웅상의) 암수가 서로 노니는데 念我之獨 (염아지독) 외로울 사 이내 몸은 誰其與歸 (수기여귀) 뉘와 함께 돌아갈꼬 고구려 시조 주몽(朱蒙)이 나이 40세에 세상을 떠나자 유리왕(儒理王)이 다음 왕위에 올랐다. 유리왕은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기 전 북부여 (北夫餘)에서 정실부인 예(禮)씨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다. 유리왕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 주몽이 남쪽으로 내려가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소년 시절 유리는 장난이 아주 심했다. 유리는 어느 날 활을 가지고 놀다가 실수로 어느 부인이 이고 가는 물동이를 맞힌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부인으로부터 ‘천하에 아비 없는 후레자식.’이라는 욕설을 듣게 된다. 너무 주..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14

창분(彰芬)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눈골 식구들이 먹고 살아갈 식량을 마련하는 일이다. 자신이 이 마을을 이끌어가야 할 촌장인 이상 비록 말없이 지켜주던 한식이 뒤에 없을지라도, 마을 식구들 모두를 굶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자신을 채찍 한다. 그것이 창분에게 주어진 현실이었고, 그런 과정을 겪으며 그녀의 심성은 더욱 강인해지고, 그녀의 의지 또한 더욱 굳건해진다. 며칠 동안 너새집 초막에 누운 채 깊은 수렁 속을 헤매던 창분은, 만삭의 몸으로 자신을 구완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매달리고 있는 순옥(順玉)을 바라보고는, 깊은 자책에 빠진다. 아비 없이 태어날 아이를 배가 산이 되도록 뱃속에 품고도 서럽다는 내색 한번 못하고 꿋꿋이 버티는 순옥을 보면서 심한 가책을 느낀 것이다. 한식(漢植)이 옆에 ..

(제1화) 고려의 문신 이조년(李兆年)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 인양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하얗게 핀 배꽃에 달은 환히 비치고 은하수는 흘러서 자정을 알리는 때 배꽃 한 가지에 어린 봄날의 애틋한 마음을 두견새야 알겠느냐마는 정이 많은 것도 병인 것 같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겠구나) 고시조집 해동가요, 청구영언, 병와가곡집에 실려 전해오는 다정가(多情歌)는, 고려의 국운이 저물어가는 여말에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문신이자 시인인 이조년(李兆年, 1269년~1343년)이 봄밤의 정서를 시각적·청각적 이미지의 대비를 통해 형상화한 고시조이다. ‘배꽃’과 ‘달빛’, ‘소쩍새’의 이미지를 통하여 봄밤의 애상과 우수에 잠겨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화자의 심정..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13

장한식(張漢植)을 뒤에서 부른 사람은 반도(叛徒)들의 부두목격인 정인엽(鄭仁燁)이었다. 워낙 잔인한 성품인 데다 목소리마저 귀신 울음소리를 닮았다 하여 저승사자라는 별호로 통하는 인물이다. 두목인 국경인(鞠景仁)의 오른팔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반도 무리를 배후에서 선동하며 이끌고 있는 조직의 행동대장 격이다. 가담하고 있는 반도들 모두가 두목인 국경인보다도 그를 더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을 정도로 독종 중에 독종이다. 그들은 한때 장한식과 동거동락 하던 동지들이었다. 한식이 창분을 만난 후 그들 반도집단에서 빠져나오자 배신자로 낙인이 찍힌 것이다. 정인엽을 따르는 반도들 십여 명은 한식(漢植)을 상대로 사정없이 몽둥이 매질을 해댔고, 체격이 장대하여 제법 힘 깨나 쓴다는 한식도 그들의 선제공격에 기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