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의 인생 노트

노인의 침묵(沈默)

추동 2022. 8. 1. 07:42

 

쇠락해진 노인의 가슴 속에도, 그리움의 잔상(殘像)은 지워질 수 없는 모양이다. 노인들은 석양이 질 무렵이면,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망연(茫然)히 먼 하늘을 응시하며 서성이는 경우도 곧잘 일어난다. 그럴 때면, 가슴 속 깊은 곳에 자상(刺傷)처럼 박혀 있는 부모님의 얼굴, 홀연히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반려자의 체온, 그리고 어린 시절의 옛 친구들과 고락을 나누던 동료들이 보고 싶어 비감(悲感)에 젖기도 한다. 그리움의 멍울은 외로움이 되어 상흔으로 남고, 외로움이 깊어지면 점차 말문을 잃게 되어 침묵(沈默)의 세상으로 가라앉고 만다.

 

노인의 침묵은 묵언(默言)의 수행인가, 아니면 현실 도피인가?

노인의 침묵을, 조용한 삶에 안주(安住)하려는 노인 특유의 생존방식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침묵의 실상은 허무와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노인의 유약한 몸부림이요, 스스로 폐인(廢人)이 되었음을 독백하는 절규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노인들 대부분은 산업화 시대의 주인공으로, 고군분투하던 역군의 전사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참담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가난에 짓눌리고, 일방적 기업문화에 혹사당하며, 자식을 키우기 위해 온몸을 던졌으나, 이제는 허울만 남은 지치고 초라한 노인의 행색으로 내쳐지고 있다. 가혹한 박탈감이 이들을 침묵의 공간으로 몰아넣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몸에는 명예로운 상흔(傷痕)과 삶의 스토리가 가득한, 살아있는 영웅들이 아니던가!

 

나는 명상과 글쓰기를 중요한 하루 일과로 실행하고 있다. 그것이 어두운 침묵의 공간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명상은 마음이 불안 할 때, 눈을 감고 들숨, 날숨의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는 수련법이다. 잡다한 생각을 정돈하고 갈등을 제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침묵하는 노인의 치유법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일상은, 매일 0.3mm의 세필(細筆) 펜으로 "손 글씨"를 써서, 대학노트 한페이지를 채우는 일이다. 글 내용은 일기, 새로운 지식과 정보,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 독서일기와 잡기 등이다. 늙음에 따라 점증되는 "사고력(思考力)의 빈곤""기억력 감퇴"에 대비하여 뇌운동을 활성화시키고, 우울감을 털어내어 활력과 자부심을 높이려는 뇌()과학자의 이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어느 88세의 노인이 글쓰기를 생의 마지막 과제로 삼았다는 기사를 읽고 감동받은 바 있다. 느릿느릿 자신의 지난 삶을 돌이켜보며 글을 쓴다는 그 노인은, 작품을 만들자는 게 아니라 그저 평이한 글을 쓴다는 것이다. 인생 경험이 풍부한 노인들은 졸필이나마 글을 쓰면서 자신이 걸어왔던 여정을 충분히 복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생동감 넘치는 노인상을 실현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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