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진화역사

농업혁명이 일어난 동기

추동 2019. 8. 26. 08:39


터키의 리베클리 테페 유적복원도



●농업혁명이 일어난 동기


     )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의 돌기둥에는 사슴, 가젤, 돼지, 거위 등의 동물 조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수렵 채취인들이 다산과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해 이 같은 신전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돌 기둥들은 인근에 위치한 석회암 언덕에서 바위를 떼어내 운반했는데, 기둥 하나의 무게가 10~20톤에 달했기 때문에 운반과 조각, 건설에는 적어도 체계적으로 집단화된 50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필요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오로지 종교적 목적을 위해 이 신전을 세웠을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살기 전부터 종교가 먼저 존재했고, 종교를 중심으로 문명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 원시적인 농업은 결코 수렵채취보다 많은 식량을 얻기 힘들었으며 또한 영양학적으로도 수렵채취 쪽이 더 나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신전을 건설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면, 일정 지역 내에 제한적인 식량만이 생산되는 수렵채취보다 인위적으로 식량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는 농업을 선택하게 되었을 것이다. 괴베클리 테베는 또 하나의 놀라운 비밀을 지니고 있다. 유전학자들은 작물화된 밀의 발상지는 괴베클리 테베에서 30㎞ 떨어진 카라사다그 언덕이라고 규명하고 있다. 이 신전을 건설하고 이용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많은 식량이 필요했을 것이다.


     ) 수렵 채집인들이 야생 밀 채취에서 집약적인 밀 경작으로 전환한 목적 은 정상적인 식량공급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전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개척자들이 처음에 마을을 세우고 이것이 번영하면서 그 중앙에 신전을 건설했을 것으로 보았지만, 사실은 먼저 신전(神殿)이 세워지고 나중에 그 주위에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농업혁명이 일어난 원인은 다분히 종교적 이유가 계기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혁명의 희생자들


    ) 사람들은 공격적이고 통제가 어려운 양을 먼저 도축했고, 순종적이고 마음에 드는 양은 오래 살면서 번식하도록 허락했다. 그 결과 양, 염소, 돼지, , 닭들은 가축화되었고, 순종적인 무리로 변했다. 이렇게 가축화된 동물들은 인간에게 식량(고기, 우유, 달걀 등)과 원자재(가죽, 양모 등), 근력을 제공해 주었다. 또한 이제껏 인간의 힘으로 해오던 수송, 쟁기질, 곡식 빻기 등 힘든 일을 대신했다.


    ) 대부분의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은 곡물 재배에 주력했고, 동물을 키우는 것은 2차적 활동이었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동물 착취를 위주로 하는 새로운 목축민 부족이 생겨났다. 지구상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대형 포유류를 순서대로 꼽으면 사람이 첫째이고, 2, 3, 4위는 가축화된 소, 돼지, 양이다.


    ) 동물의 가축화는 일련의 야만적 관행을 기반으로 이뤄졌고, 이런 관행은 수백 수천 년이 흐르면서 더욱 잔인해졌다. 가축 동물들은 인간의 경제적 필요에 의해 몇 주 내지 몇 개월 만에 도살당해야 했다농부들은 동물을 울타리 안에 가두고, 마구와 굴레를 채우고, 채찍과 소몰이 막대로 훈련시키고, 신체 일부를 자르는 기술을 발달시켰다.


    ) 낙농 농가에서 젖소는 약 5년을 산 뒤 도살된다. 5년 동안 젖소는 항상 임신 중이며, 출산하면 2~4개월 내에 또다시 수태한다. 우유의 최대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송아지는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에게서 떨어져야 한다. 암송아지는 다음 세대의 젖소로 길러지고, 수송아지는 육류산업에 넘겨진다. 양치기가 아닌 양 떼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다수의 가축화된 동물에게 농업혁명은 끔찍한 재앙이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사건 중 하나다. 인류가 자연과의 긴밀한 공생을 내던지고 탐욕과 소외를 향해 달려간 전환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