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고대 수메르인이 쓴 설형문자(楔形文字―쐐기문자)
●정보(情報) 저장능력의 변화
가)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이 정보를 저장해온 장소는 단 하나, 자신의 뇌뿐이었다. 불행히도 인간의 뇌는 큰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저장하는 장치로서는 온전하지 못하다.
첫째, 인간의 뇌는 원천적으로 용량이 부족하다.
둘째, 인간이 죽으면 뇌도 같이 죽는다. 뇌에 축적된 모든 정보는 죽는 순간 모두 지워지게 된다.
셋째, 인간의 뇌는 특정한 유형의 정보만을 저장하고 처리하도록 적응되어 있다.
나) 고대 수렵 채집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많은 종류의 식물과 동물의 형태와 속성, 행동패턴을 기억해야만 했다. 그들의 뇌는 막대한 양의 식물학, 동물학, 지형학, 사회학의 정보를 저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농업혁명 이후에는 유달리 복잡한 사회가 등장하면서, 수렵 채집인들과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정보가 중요해졌다. 수학적 데이터가 핵심이었다. 바로 숫자였다.
다) 농업혁명 이래 부족이 커져서 도시와 왕국을 이루게 되면, 이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해야 했지만, 인간의 뇌는 그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간 집단의 규모는 수천 년간 작고 단순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라) 문제를 처음 극복한 것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지금의 이라크)에 살던 고대 수메르인(Sumerian)이었다. 농사에 적합한 기후조건 때문에 소출이 풍부했고 부족을 번영시켰다. 주민 수가 늘어나면서 이들 사이의 업무량을 조율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도 늘어났다. 기원전 3500~3000년 어느 시기에, 몇 명의 수메르 천재들이 뇌 바깥에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방법을 발명했다. 대량의 수학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맞춤 시스템이었다. 그들이 발명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은 “쓰기”라는 것이었다.
●정보처리 방법, ‘문자 쓰기’의 발전
가) 수메르인(Sumerian)의 쓰기 체계는 숫자를 나타내는 기호와 사람, 동물, 토지, 날짜, 사유품 등을 나타내는 기호이며, 두 기호를 결합함으로써 많은 데이터를 보존할 수 있었다. 한 인간의 뇌가 기억할 수 있는 용량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다. 설형문자(쐐기문자–진흙 점토에 문자를 새겨 넣음)를 쓴 수메르 문명은 이집트보다 1세기, 인더스보다 6세기, 중국 문명보다 13세기쯤 앞서는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문명이었다.
나)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1주일이 7일, 1년을 12개월로 하는 태음력을 만들었고, 60진법에 따라 원주를 360도, 1분을 60초, 1시간을 60분, 1일을 24시간으로 정한 것도 수메르인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집트인들은 상형문자라 하는 완전한 문자체계를 개발했다. 또 다른 문자체계는 기원전 1200년경 중국에서 발달했고, 기원전 1000년~500년경에는 중미에서 개발되었다.
다) 문서를 점토에 새기는 것만으로는 효율적이고 정확하며 편리한 데이터 처리를 보장하기 어려웠다. 이를 위해서는 목록을 기록하는 조직적인 방법, 복제수단, 빠르고 정확한 검색법, 그리고 이런 도구에 박식한 사서들이 필요했다.
라) 그러나 이런 방법을 발명하는 것은 당시에 실현될 수 없었고, 설형문자는 점차 한계에 부딪혀 인간에게서 멀어져 갔다. 결정적인 다음 방식은 9세기 이전에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0에서 9에 이르는 10개의 기호로 이뤄진 체계였다. 인도인이 처음 발명했음에도 아라비아 숫자로 알려진 숫자다. 물론 아랍인의 역할이 컸다. 그들이 인도를 침공해 이 체계를 보았을 때 그 쓸모를 알아차렸고, 그것을 잘 다듬어서 중동과 유럽으로 퍼뜨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아라비아 숫자에 더하기, 빼기, 곱하기 등의 부호가 추가되어 현대 수학의 표기법이 되었다. 이 쓰기 체계는 여전히 불완전한 문자체계이지만, 세계의 지배언어가 되었다.
마) 쓰기는 인간의 의식을 돕는 하인으로 탄생했지만, 이제는 점점 더 우리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쓰기 부호는 인간이 씌운 굴레를 벗어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 문자체계를 더욱 강하게 통제하려 하자 그 체계들은 그 반발로 인류를 쓸어버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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