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살던 비좁은 집이 국가를 이루었다.>
●농업혁명의 후유증
가) 농경 덕분에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대부분의 농부는 정착지에서 살았다.
고대 수렵 채집인들의 본거지는 언덕과 시냇물, 숲과 하늘을 포함하는 땅 전체였지만, 농부는 하루 종일 작은 밭이나 과수원에서 일했고, 생활은 비좁은 집에서 이뤄졌다. 농부는 작은 구조물인 집에 대해 매우 강한 애착을 느꼈고, 인공 섬 같은 자신의 집 주변을 강력한 요새로 구축했다. ‘내 집’에 대한 집착과 이웃과의 분리는, 인간을 이전보다 훨씬 더 자기중심적인 존재로 탈바꿈시켜놓았다.
나) 수렵 채집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데다, 먹을 거리를 저장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별 걱정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농부들은 언제나 미래를 의식하고 그에 맞춰 일해야 했다. 대부분의 농부 마을은 제한된 종류의 재배작물과 가축을 기르며 살았기 때문에 가뭄, 홍수, 병충해 등에 취약했다.
농부들은 소비보다 더 많이 생산해야 하고, 먹고 싶은 식량을 겨울이나 내년을 위해 참고 비축해 두었다.
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형성된 마을 농민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공동으로 해소시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발생된 것이 정치사회체제였고, 그 과정에서 지배자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많은 양의 식량을 중간에서 가로챘다. 이렇게 공출된 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종교활동의 기초가 되었다. 그들은 왕궁과 성채, 사원을 지었다. 인류의 90%는 매일 구슬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들이지만, 생산물은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등의 입으로 들어갔다.
라) 농민들이 생산한 잉여식량이 새로운 수송 기술과 합쳐지자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더 큰 마을을 이룰 수 있었고, 그 마을은 읍이 되었고, 드디어 도시가 되었으며, 새로운 왕국과 상업 망이 모두를 하나로 묶었다.
슬프게슬프게도 부지런한 농부들은 그렇게 힘들여 일했지만,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얻을 수 없었다. 농민들은 한 해 땀 흘린 농사의 소출을 압제와 착취에 의해 빼앗기고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생물학(生物學)의 원칙
가) 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된 생명체다. 창조는 동일함을 기반으로 하지만, 진화는 다름과 차이에 기반을 둔다. 진화는 환경과 기후, 먹는 것 등에 따라 변이되거나 각기 달라지는 것을 전제로 하며, 생존 가능성에 차이가 난다. 평등이나 권리, 자유, 행복이라는 실체는 생물학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르게 진화했으며, 이들은 변이가 가능한 모종의 특질을 지니고 태어났고, 여기에는 생명유지 본능과 쾌락추구 본능이 있을 뿐이다.
나)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또한 인류에게는 하늘이 부여한 권리 같은 것은 없다. 다른 모든 동물들에게 그런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생물학적으로 자연의 질서는 항상 안정되어 있다. 다만 인류가 자연을 지배하려 하거나 파괴할 때 자연의 질서는 부분적으로 안정을 잃는다. 결국 인간이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 분풀이로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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