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진화역사

수렵 채집인(狩獵 採集人)의 생활변화

추동 2019. 8. 15. 09:44





● 수렵 채집인(狩獵 採集人)의 생활변화


     ) 지난 2백 년간 도시 노동자나 사무직으로 생계를 이어간 인간은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이에 앞선 1만년 동안 대부분의 사피엔스는 농부와 목축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이 기간은, 우리 조상들이 수렵과 채취를 하며 살아온 수만 년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현대인의 사회적심리적 특성 중 많은 부분이 이처럼 농경을 시작하기 전의 기나긴 수렵채집 시대에 형성되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우리의 뇌와 마음은 상당부분 수렵채집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 후기 산업사회의 환경 덕분에 우리는 이전의 어떤 세대와 비교하더라도 물적 자원이 풍부해지고 수명도 길어졌지만, 이런 환경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소외되고 우울하고 압박 받는다고 느끼게 만들었고,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아직도 그 속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이상적으로 동경하는 생활이 전원생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 사피엔스는 식량과 원재료만을 수집하거나 채집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식물의 성장 패턴과 동물들의 습성을 알 필요가 있었다. 어느 식품이 영양가가 높고 어느 것을 먹으면 탈이 나고 이때 어떤 것이 치료제가 되는지를 알아야 했다. 또한 계절과 기후의 변화를 알 필요가 있었다. 평범한 수렵 채집인은 주변환경에 대해 넓고 깊고 다양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수렵 채집인들은 주변의 동물, 식물, 물건뿐 아니라 자신의 신체와 감각이라는 내부세계에 대해서도 완벽히 터득했다.


    ) 이 시대에 생존하려면 누구나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녀야 했다. 개인 수준에서 보자면, 고대 수렵 채집인은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유로 수렵 채집인은 굶어 죽거나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았다. 모든 시기, 대부분의 장소에서 수렵 채집인은 나름의 이상적인 영양소를 취할 수 있었다. 인간은 이러한 식단을 수십만 년 동안 먹어왔고 신체 역시 잘 적응해왔다. 건강에 유익한 음식을 다양하게 먹고 주당 일하는 시간도 가장 짧았으며, 자유롭고, 전염병도 드물었으니, 이를 두고 농경이전 수렵채집 시대를 ‘최초의 풍요사회라고 불렀다.


 


수렵 채집인의 정령(精靈)


     ) 수렵 채집인들은 모든 장소, 동물, 식물, 자연현상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영혼과 정신) 신앙을 믿고 있었으며, 인간은 이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사물과 생물만 정령이 있는 게 아니라 무형의 실체에도 정령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죽은 사람의 영혼, 악마, 요정, 천사라고 부르는 사악하거나 우호적인 존재가 모두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말이나 노래, 춤이나 의식을 통해 이들 모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애니미즘(Animism) 신앙은 특정한 종교가 아니고, 수천 종이 넘는 종교와 사교와 신앙을 모두 합친 포괄적 이름이다. 결국 고대 수렵 채집인들이나 현대 이전의 농업종사자들 대부분이 유신론자였음을 의미한다.


※유신론(有神論ㆍTheism)이란 우주의 질서가 인간(人間)과 신() 사이의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수렵 채집인들은 각각 다른 집단의 신앙과 관습을 기괴한 이단으로 보아 서로 격멸하며 적대시했다.


    ) 수렵채집 사회에서 사람의 죽음은 전쟁 등 폭력에 의한 사망이 절반을 넘었다. 나머지는 굶주림과 추위, 질병 때문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정 시기, 특정 지역의 사람들은 일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잔인하고 격렬한 폭력으로 고통을 당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수렵 채집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해, 오랜 세월 동안 생사에 대한 기원을 담은 열광적인 종교활동, 철학과 예술적 행동을 경험하며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수렵 채집인의 생태계 파괴


     ) 지구라는 행성은 각기 구별되는 여러 생태계로 나뉘어 있었고, 구역마다 각자 독특한 동식물이 살고 있었다. 인지혁명의 결과 사피엔스는 기술과 조직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외부세계로 진출하는 능력을 취득할 수 있었다.

            약 45,000년 전 인도네시아에 살던 사피엔스는 배를 건조하고 조종하는 법을 터득하여 호주로 항해하여 정착할 수             있었다. 최초의 인류가 호주까지 진출한 것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   

            하거나  아폴로 11호 탐사선이 달에 착륙한 것 이상의 성과였다


    ) 최초의 수렵 채집인이 호주 해안에 발을 들인 순간은, 호모 사피엔스가 이 지역에서 먹이사슬의 최정상으로 올라가는 순간이었고, 이후 지구라는 행성의 연대기에서 사피엔스가 가장 치명적인 인간(人間) ()이 된 순간이었다. 호주 정복인류는 현지 생태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 생태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꿔버렸다. 호주에는 캥거루, 사자, 코알라, 타조, 도마뱀 등이 서식하고 있었지만, 인류에 의해 사라져 24종의 대형 동물들 중 23종이 멸종했다. 이보다 작은 종도 대량으로 사라졌다. 호주 전체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붕괴되고 재조정되었다.


    ) 호주에서 일어난 것과 유사한 대량멸종이 그 다음 수천 년 간 인류가 또 다른 지역에 정착할 때마다 거듭거듭 벌어졌다. 뉴질랜드에서도 인류가 그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그곳의 대형동물들은 대부분 멸종됐고, 모든 조류 종의 60%가 사라졌다. 생태계 파괴는 아메리카, 시베리아 등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횡행했다. 인류가 각종 동식물을 멸종시키며 생태계를 파괴한 것은 인류의 발전된 사냥기술과 화전 농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도 인간의 생태계 파괴는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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