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45) 임금에게 올리는 고임상
●궁중음식 조리인과 숙설소(熟設所)
큰 잔치나 국장(國葬)을 치를 때 임시로 설치되는 숙설소는 성격에 따라 그 규모가 일정하지 않았지만, 통상 190여 칸의 엄청난 규모로 세워졌는데, 근정전이 25칸의 규모인데 비해 무려 8배에 이르는 대형 규모이다.
이곳 숙설소에 조리인(調理人)으로 동원되는 대령숙수(待令熟手)는 40~100여 명에 이른다. 숙설소의 내부 구조는 숙설소 전체를 관장하는 원가가(元假家), 음식상을 차리는 상배가가(床排假家), 국과 탕을 끓이는 탕가가(湯假家), 떡을 만드는 병가가(餠假家), 솥을 걸어 밥 짓고 반찬하는 식정가가(食鼎假家), 얼음 통을 두고 음식물을 보관 관리하는 조빙가가(照氷假家), 잡다한 음식재료를 보관하는 잡물가가(雜物假家), 숯과 장작 등 연료를 다루는 탄가가(炭假家)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궁중 음식은 궁녀에 의해 만드는 일상식(日常食)과 숙수들에 의해 만드는 의례식(儀禮食)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조선시대 궁중의 음식 조리인은, 평상시 수라상에 올리는 음식을 조리하는 일을 주로 내인인 주방상궁(주방장)들이 만들었으며, 궁중의 잔치인 진연이나 진찬 때는 대령숙수라고 하는 남자조리사들이 만들었다.
주방상궁(廚房尙宮)은 대개 40세가 지나서 되는데 이미 이 때는 조리경험이 30년 이상이나 되는 전문 조리인이다. 상궁은 궁녀 중 정5품으로 최고직이고 최하는 4,5세의 어린 견습내인까지 있다. 주방내인은 대개 10세 이상부터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시작하며, 평상시는 왕과 왕비의 조석 수라상을 준비한다. 궁녀 중 장식(掌食), 장찬(掌饌), 전선(典膳), 상식(尙食) 등이 음식에 관련된 직종을 맡는 이들이다.
이조(吏曹)에 속하는 내시부(內侍府)는 궐내 음식물의 감독(지배인), 왕명의 전달, 궐문의 수직(守直), 궁궐의 청소 등의 임무를 맡는다. 음식관련 업무를 맡는 내시는 상선(尙膳), 상온(尙醞), 상차(尙茶)가 있다. 음식을 직접 만드는 일보다는 전체를 주관하고 대접하는 일을 주로 맡는다. 특히 상선은 종2품 벼슬로 식사에 관한 일을 맡으며 정원이 두 명이고, 상온은 정3품 벼슬로 술에 관한 일을 맡으며 정원은 한 명이며, 상차는 정3품으로 차에 관한 일을 맡으며 정원은 한 명이다.
대령숙수(待令熟手)는 조선왕조의 이조(吏曹) 산하 사옹원(司饔院)에 속해있는 남자 전문조리사다. 대령숙수는 세습(世襲)에 의해 대대로 이어졌고, 궁 밖에 살면서 궁중의 잔치인 진연이나 진찬 때 입궐해 음식을 만들었다. 솜씨가 좋은 숙수들은 대부분 대(代)를 이어가며 궁에 머물렀고 왕의 총애도 많이 받았다. 이들은 모두 종6품에서 종9품까지의 품계를 지닌 조리 기술자로 중인계급(中人階級)이었다.
●궁중음식의 특징과 기본
일반적으로 수라상(水剌床)에는 기본(基本) 음식으로 두 종류의 밥(쌀밥과 붉은 밥), 두 종류의 국(고깃국과 채소국), 세 종류의 김치(배추김치, 무김치, 국물김치), 세 종류의 장(간장, 초장, 겨자, 고추장), 두 가지의 찌개(맑은 것, 된장 고추장을 넣은 찌개), 찜 한 가지 등으로 구성되고, 12첩 반상(飯床)으로 찬(饌) 12가지(더운 구이, 찬 구이, 생채, 삼색나물, 삼색전 유화, 회, 조림, 젓갈, 장과 장아찌), 마른 찬, 수육, 수란(달걀반숙)이 올라갔다. 이 외에 전골이 즉석 요리로 올라간다.
궁중 음식은 곡물(穀物)을 발효시킨 간장, 된장, 고추장으로 기본 맛을 내고, 채소(菜蔬)를 발효시킨 김치와 장아찌, 생선(生鮮)을 발효시킨 젓갈로 맛을 내는 자연 친화적인 음식이다. 짜고, 달고, 시고, 쓰고, 매운 맛 외에 감칠맛도 난다. 쇠고기, 표고버섯은 어느 음식에나 들어가는 조미료(調味料)처럼 썼는데 이유는 이 것들이 조미료가 없던 시대에 감칠맛을 내주는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 음식은 나이가 든 어른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조리를 하므로 부드럽게 만들어야 하고, 젓가락을 사용해서 한번에 먹기 쉽게 만들어야 하니 다지거나 채를 써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궁중 음식은 재료의 모양을 살리기보다는 잘게 썰어 씹기 쉽고 소화가 잘 되도록 했다.
잔치 때 임금이 받는 상은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진어상에 올리는 음식은 종류, 품수, 고임의 높이에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 병과류ㆍ생과류ㆍ찬품류ㆍ음청류 등 대개 50가지 이상의 음식을 마련했다.
잔치를 하는 동안에는 임금과 대비, 왕비, 세자에게 고임상과 진어상을 여러 차례 올리고, 참석한 왕족이나 제신, 친척, 내∙외명부, 수고한 악공, 무희, 소리꾼, 군인 등 참석자 전원에게 차등을 두어 수십 가지의 상을 마련한다. 큰 상인 고임상은 잔치가 진행되는 동안 아무도 먹지 못한다. 실제로 먹는 상은 별도로 마련하는데, 고임상은 음식에 따라 높이를 달리한다.
화채ㆍ찜ㆍ탕ㆍ열구자탕ㆍ장류 등 물기가 많은 음식은 고임상에 올릴 수 없고, 고임 음식 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화려한 꽃으로 장식하는데 이를 상화(床花)라고 한다. 고임의 높이는 떡과 과자ㆍ생과류는 1자5치 정도로 가장 높이 고인다. 상을 물린 후에는 진찬에 올렸던 음식을 종친이나 신하에게 하사했다. 대개 한지로 한 가지씩 음식을 싸서 보냈기 때문에 종친마다 받는 음식이 달랐다. 이 음식들은 음식을 나르는 데 쓰는 들것인 가자(架子)에 실려 교군이 앞뒤로 끌고 다니며 나눠주었다.
궁중 주방은 화재의 염려가 있어 침전과 떨어져 있는 건물에 배치한다. 궁 안 여러 곳에 염고(鹽庫)와 장고(醬庫)가 있어서 동궐도에도 여러 곳에 장독들이 즐비한 장독대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장뿐만 아니라 김치나 젓갈 등도 저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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