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정혜신(鄭惠信)>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1만2천여 명의 속마음을 듣고 나누었다. 그간 저자가 보여준 남성심리에 대한 탁월한 공감 능력과 꾸준한 연구활동은 이미 취향의 수준을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또한 중년남성들의 삶을 정신의학적으로 살펴본 '맨콤플렉스' 연구 및 기업경영전략에 정신의학적 이론을 접목시킨 '심리경영' 등의 연구활동과 아울러, 최근에는 '조직원의 잠재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업 차원의 정신건강관리 전략' 탐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는 『불안한 시대로부터의 탈출』, 『정혜신의 사람 공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당신으로 충분하다』, 『홀가분』, 『사람 vs 사람』, 『남자 vs 남자』 등이 있다.
<책의 특징>
모든 사람이 원하는 말→”네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내가 그걸 몰랐었구나.”
아이의 그 말→”엄마는 나한테 그러면 안되지! 내 편이어야지! 내게 물어 보았어야지!”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너는 항상 옳다’는 말의 본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내편 인증’이다. 이것이 심리적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 공급이다.
“자기 마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돼요”
나의 생각이나 마음의 상태를 잘 아는 이가 누구인지 한 번 떠올려보라. ‘나라는 존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언제라도 ‘당신이 옳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있었나?’, ‘반대로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인 적 있었나?’ 10월 초 <당신이 옳다>를 출간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이 질문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다.
이 책은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이며 동시에 모두 치유적 존재’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책을 읽는 동안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공감이라 착각해왔던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타인의 대한 공감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소홀했던 내 마음에 미안해지기도 한다.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소박한 심리학이 적정심리학이다.
내 삶이 나와 멀어질 때, 우울감, 공황장애 증상이 발생한다. ‘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들게 마련이다. 공황발작은 자기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버등거리며 보내는 급전(急電)이기도 하다. 만성적인 ‘나’ 기근에 시다리는 사람들, 관계의 갈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나 소생법’ 일명 ‘심리적 CPR(심폐소생술)’이 이 책의 줄거리다.
<책 속으로>
어떤 사람이 죽을 만큼 힘들 때, 자기 존재를 받아주는 손길이나 눈길, 마음을 만나면 그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다.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공감의 본질적인 속성은 바로 그런 것이다. 나와 함께 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게 공감의 힘이다.
공감이란 건 무게를 실어야 하고 공감의 과녁을 정확히 발견할 때까지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공감의 힘이 어떤지 내가 경험을 하면 ‘도움을 준다’라는 자각도 없이 이미 누군가를 돕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걸 터득하게 된다.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서 을로서 모멸감을 느끼고 억울할 때, 상대가 잘못됐으면 좋겠다며 미워하는 감정이 들 것이고 그것은 당연하고 정상적인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그 사람에게 그런 생각을 가질 수가 있을까’ 하며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자책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일생 우리는 그런 문화 속에서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책하고 스스로 규정하는 것에 자연스럽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아플 수밖에 없고,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당신이 옳다’는 말은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긍정의 표현이다. 함부로 판단하고 규정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건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고,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줘야 한다. 어떤 이유든, 본인의 행동이나 마음에는 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한 것이다. 상황이나 마음이 모호하면 사람은 불안해고, 불안하면 눈에 보이는 무언가에 집착하게 돼있다. 내가 진짜 누구인지,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것이 심리적 허기, 결핍, 심리적 취약점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존재에 온전히 주목하고 집중한 적이 없다는 자각,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다는 자각이 너무 많기 때문에 사람이 온전하게 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젊을 때 인정받고 성취하고 사랑받으면서 젊은 시절을 탄탄히 보낸다고 하여 노년기에도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존재에 대한 집중은 심리적으로 힘들 때만 필요한 게 아니다. 노인도 노인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 봐야 한다. 그런 시선들이 어디서든 작동해야만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노인을 노인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이 전부인 존재로 바라본다. 누군가와 생생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기체가 아닌 ‘노인 일반’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그 존재에 대한 무례다. 그 시선은 그의 개별성을 몽땅 증발시킨다. 변하는 상황과 현실에 따라 노인도 함께 움직이는 능동적 존재다.
<결언>
자기 존재가 집중 받고 주목받는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한다. 그 안정감 속에서 비로소 사람은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예외없이 변하게 하는 그 지점이 바로 ‘자기’다. 사람은 자기에게 공감해주는 사람에게 반드시 공감한다. 사람은 본래 그런 존재다.
한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스팩이 또한 감정(感情)이다. 감정은 존재의 핵심이다. 내 감정은 오로지 ‘나’다. 감정이 삭제된 존재는 ‘나’가 아니다. 희로애락이 차단된 삶이란 이미 나에게서 많이 멀어진 삶이다.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은 심리적 심폐소생술, 즉 심장충격기를 시작하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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