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의 독서일기

일조의 독서일기-소박한 정원

추동 2019. 12. 13. 16:27



<작가소개-오경아>


방송작가 출신으로, 2005년부터 영국 에식스 대학교에서 7년 동안 조경학을 공부하며, 정원 디자인과 가드닝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들을 전해왔다. 정원을 잘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식물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는 것을 깨닫고 세계 최고의 식물원인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든의 인턴 정원사로 1년 간 일했다.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정원 설계회사 오가든스를 설립하고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며, 속초에 자리한오경아의 정원학교를 통해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도 알기 쉽게 가드닝과 가든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강좌를 선보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읽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원예 이야기와 가드닝 지식을 담은 『정원의 발견』, 자칫 전문적이고 어려울 수 있는 가든 디자인 원리와 실제를 예술가들의 정원 이야기를 바탕으로 더한층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가든 디자인의 발견』, 막연하게만 꿈꿔왔던 시골에서의 삶을 어떻게 잘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을까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골생활 안내서 『시골의 발견』, 정원 속에 숨겨진 과학, 철학, 역사와 예술의 178가지 이야기를 담은 『정원생활자』, 그리고 정원을 주제로 한 세권의 에세이 『소박한 정원』, 『영국 정원 산책』,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등이 있다.


 


<책의 특징>


『소박한 정원』은 방송작가였던 오경아가 정원 일을 배우고자 홀연히 영국으로 떠나 펜과 키보드 대신 전지가위와 삽을 들고 영국의 대표 정원들에서 보낸 3년여의 시간을 담아낸 책이다. 책 속에서 그녀는 초록의 정원에서 느끼고 배운 감동과 기쁨, 슬픔과 깨달음을 100여 개의 산문으로 소박하게 들려준다. 흙을 일구고, 나무를 다듬고, 농기구를 다루면서 흘린 땀방울을 전달한다. 이번 개정판 『소박한 정원』은 디자인과 장정을 새롭게 해 글을 담았고, 가든 팁 구성을 재편해 읽는 즐거움을 더했다. 또한 글로만 가득했던 책 속에 실제 사진들을 바탕으로 한 손그림 삽화를 입혀서 볼거리와 느낄거리를 한층 보강했다. 본문은 총 100여 가지 정원 일기와 50여 가지 가든 팁, 23가지 정원 부록으로 구성돼 있다.


 


‘정원 일기는 봄과 여름, 가을에서 겨울, 겨울에서 봄. 모두 세 개의 장 안에 정원에서 보낸 3년여 시간을 기록한 100여 가지의 소박한 산문들로 구성됐다. 바람과 비, 햇볕, 흙 그리고 식물들 속에서 땀으로 일구어 낸 노동과 배움의 기록들이다. 이 산문들은 단지 정원 일과 식물들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 삶 속에서 지켜져야 할 가치와 의미에 대해 소박하게 묻는다.


 


부록으로 실린영국의 정원 관련 볼거리 23’은 독특하면서 의미 있는 여행을 떠나고픈 이들을 위한 유용한 팁이다. 지은이가 일했던 큐가든과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정원 시싱허스트 캐슬 가든, 거리 꽃시장인 콜롬비아 로드 플라워마켓 등 읽는 것만으로도 생생한 영국 정원과 관련 명소들의 핵심 이야기가 정리돼 있다.


 


<책 속으로>


“가든디자인 공부를 하겠다고 한국을 떠나온 건 어쩌면 빛 좋은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16년 동안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매일 써대는 방송 원고가 내 삶이고, 힘이고, 돈이고, 명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마흔의 나이가 소리도 없이 다가오는 어디쯤에 참 많이 지치고 망가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들의 작은 실수를 참아주지 못하고, 작고 사소한 것들을 용서할 수 없어 괴로워하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조급증은 늘 심장을 불안하게 뜀뛰게 했다. 아파트가 싫어 일산에 집을 짓고 들어간 뒤 작은 마당을 선물로 받았다. 그 손바닥만 한 정원에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계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여섯 해를 보낸 어느 12월의 새벽, 밤새 내린 눈이 소복이 쌓인 마당에 서서 가을에 맺힌 고염을 먹으려고 찾아온 새들 속에서 문득 알았다. 이 작은 정원에서 지극한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이게 영국으로까지 나를 떠나오게 한 진짜 이유고 변명이다.”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일꾼이 가장 골칫덩이라고 하더니 내가 꼭 그 꼴이었다. 남들보다 깨끗해 보이는 화단을 만드는 게 정원을 잘 가꾸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뭐든 서둘러 남들보다 더 일찍 시작하고 정리하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음 조급한 정원사의 손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충분히 스스로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하고 미리 자르거나 미리 내놓은 식물들은 엄청난 시련을 치르거나 죽어간다. 정원 일은 요즘 세상과는 반대로 가는 일이다. 빠르고 간단하게가 아니라 느리게 천천히 가는 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일이다. 아무리 마지막 추위가 다 지나갔다고 일기예보가 장담해도 한 번 짚어가는 답답한 느림, 누렇게 빛바래가는 잎사귀가 보기 싫어도 식물 스스로가 이제는 됐다고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주는 무던함, 잘라놓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생각한 후 가위를 드는 신중함, 그게 정원의 일이다. 그 훈련이 정원사의 공부이기도 하다.”


 


정원사의 일 역시 식물을 키우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의 타고난 품성과 본성을 이해하고 그들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단순하다. 생김이 다르고, 키도 다르고, 피워내는 꽃과 나뭇잎도 제각각인데, 같은 기준에 놓고 똑같이 자라달라고 주문하다고 그렇게 될 리가 없다. 어떤 식물은 햇볕 쨍쨍 내리쬐는 양지를 좋아하지만 어떤 식물은 그늘진 응달을 더 좋아하고, 어떤 식물은 물기가 없는 흙을 좋아하지만 어떤 식물은 거의 뿌리를 물속에 담그고 있어야 편안해한다. 그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줘야 모두가 행복해진다. - 본문 117쪽에서


 


매일 아침 온실 문을 열 때마다 나를 반기는 난 향기는 참 따스하다. 이보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면 아마도 이 난 향에서 열대 발리 섬의 추억과 함께 영국의 이 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될 것이다. 의지할 곳 없이 낯설고 추운 영국에서의 겨울 한복판. 그래도 이 열대 온실의 난 향이 있어 마음과 몸이 참으로 따뜻해진다. 다시 견뎌볼 용기가 생겨난다. - 본문 153쪽에서


 


나뭇잎은 스스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나무가 잎을 잘라내는 것이다. 나뭇잎과 나무에 연결된 부분을 점점 부풀어오르게 한 뒤 결국은 떨어져 내리게 한다. 자기 몸의 일부였을 테니 그 잎을 잘라내며 나무가 많이 아팠을 것도 같다. 하지만 나무는 추운 겨울이면 잎이 필요 없어진다. 아니 잎을 계속 달고 있으면 나무 전체가 죽게 된다. 잎을 달고 있으면 잎은 뿌리로부터 수분을 빨아들이고 이때 추위가 몰려와 식물 속의 물이 얼면 식물 전체가 동사하게 된다. 떨어지는 낙엽이나 잘라내야 하는 나무나 다 아팠겠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유난히 바람결에 부대껴 떨어지는 낙엽의 소리가 그렇게 슬프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130


 


<결언>


“이 책 『소박한 정원』을 읽는 것은 마치 잘 가꾸어 놓은 정원을 둘러보는 기분이다. 구석구석 공감이 가고 미소도 짓고 탄성도 울리는 그런 정원. 이처럼 정원에 대한 휴머니티가 진정으로 담긴 책은 없었다. 일기를 보는 듯 현장 기록이 이토록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큰 즐거움이다.


 


작은 씨앗은 가르쳐서 아는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있다.… 씨앗들은 언제 흙을 뚫고 올라와야 하는지, 언제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울지, 어떻게 씨앗을 다시 맺어야 하는지 안다. 지구에 잉태되어 태어난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 안에는 이런 삶의 지혜가 다 담겨 있다. 그러니 키운다는 말은 애초 잘못된 단어일지도 모른다. 자식, 식물, 동물…. 그건 키우는 게 아니라 이해의 일이고 잘 자라줄 것이라는 믿음의 일이기도 하다.


 


식물은 우리에게 겸손함과 순리를 가르친다. 가든 디자이너인 작가의 생각도 비슷하다. “정원사의 일 역시 식물을 키우고 관리하는 일이 아니라 식물의 타고난 품성과 본성을 이해하고 그들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줘야 모두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세계적 식물원인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든 인턴 정원사로 일한 경험을 중심으로 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