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의 독서일기

일조의 독서일기-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2

추동 2019. 11. 3. 05:30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2

      –– 김대식의 로마 제국 특강 ––


<책속의 중요문장>


★로마제국의 지배영역은 남유럽 모든 영역, 라인강 동쪽 독일을 제외한 서유럽국가 대부분, 발칸반도와 터키ㆍ시리아ㆍ요르단ㆍ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 이집트ㆍ리비아ㆍ튀니시ㆍ알제리ㆍ모로코로 구성된 북아프리카까지 지중해를 둘러싼 모든 영토에 이른다.


★고대 문명은 나일강 델타(deltas-삼각주)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유라시아 대륙) 두 지역에서 가장 윤택한 땅 레반토(Levanto-시나이 반도)에서 시작하여 크레타(Crete-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를 거쳐 유럽으로 이동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진화과정


①기원전 6500~3800년경, 인류 최초의 우바이드(Ubaid) 문명이 탄생했다→②기원전 5000년경, 수메르(Sumer) 문명이 시작되었고 이때 쐐기문자가 발명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 수메르 법전이 편찬되었으며, 길가메시(Gilgamesh) 작품이 탄생되었다→③기원전 2330년경, 인류 첫 제국(帝國)인 아카드(Akkad) 제국이 탄생했다. 이때 지구라트(Ziggurat) 신전이 등장했다→④기원전 2230년경, 구티(Guti) 왕조→⑤기원전 2130년경, 우르(Ur) 왕조→⑥기원전 1900년경, 바빌로니아(Babylonia) 문명이 탄생했다(이때 세계 첫 도서관이 등장했고, 함무라비 법전이 반포되었다.)→⑦기원전 700년경, 페르시아(Persia) 문명으로 진화한다.


★기원전 15~17새기 문명의 특징→①이집트 문명은 신과 죽음과 영생에 집착하던 문명, ②크레타 문명은 오늘날과 같은 즐거움과 평화를 누린 문명, ③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도시와 농업과 상업으로 붐볐던 문명, ④미케네ㆍMycene 문명은 전쟁문명.


★0차세계대전(기원전 9~12세기)은 당시 슈퍼 파워인 아시리아(Assyria), 히타이트(Hittite), 이집트 등 세계화된 문명 모두가 전쟁에 휘몰렸고, 이때 유일하게 이집트만 생존했다. 이후 지중해 문명에 중세기가 시작되어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가 사라지고 도시는 폐허로 변했으며, 제국과 왕은 사라지고 농경사회로 되돌아간 그리스 반도는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스 문명은 아르카익(Archaic), 클래식 그리스, 헬레니즘(Helenism) 3가지 문명으로 나누는데, 이때의 조각은 바로크(Baroque) 양식이라 하여 과장되고 드라마틱한 표현이 특징이었다.


★로마의 흥망성쇠


►당시 영토분포는 이집트와 그리스가 지중해 동쪽을 장악하고, 로마는 이탈리아를 장악했으며, 카르타고(Carthago)는 레반토(시나이 반도)와 아라비아 반도, 인도 및 지하자원이 풍부한 이베리아(Iberia) 반도, 스페인지역까지 지중해 해상무역을 독점했다. 이때 로마는 해상무역 강국 카르타고(튀니지 일대)를 점령하고, 다음으로 영토강국 그리스를 정복하여 전 세계를 제압한다.


►로마는 정복한 민족들에게 로마의 뛰어난 하수도, 목욕탕, 학교, 단단한 도로 등의 인프라를 갖춰주고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그들을 로마인으로 흡수했다. 다만 문명의 기원과 고대 레반트의 역사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간직하던 유태인들만은 결코 로마에 굴복하지 않았고, 그 결과 유태인들은 132년부터 1948514일 현대 이스라엘 국가 건국까지 디아스포라(Diaspora-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로 세상을 떠돌아다니지만, 1800년이 넘는 기간동안 결코 그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이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결국 로마는 2~3세기에 이르러 전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를 포괄하는 하나의 세상인 로마제국을 완성했다. 그러나 광대한 로마제국의 영토는 사실상 다스릴 수 없는 규모였다. 그리고 그 광대한 제국이라는 본질적인 문제 때문에 그 멸망을 예정하고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왕정(王政)이었던 로마는, 기원전 509년 브루투스(Brutus)의 반란으로 공화정(共和政)으로 바뀌었다. 로마 공화정에서는 성인 남성들 1~2만명으로 구성된 코미티아 집회가 열려 코미티움(Comitium-정치집회 장소)에 모여 토론과 투표를 벌였고, 여기서 나온 사안을 다시 토론하는 전문가 모임인 세나투스(Senatus-원로원)가 있어 입법과 자문 등 국정활동과 집정관인 콘술(Consul)을 뽑는 막강한 권위를 갖고 있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모임은 코미티아였고, 세나투스는 오늘날의 상원 같은 역할을 했다.


►콘술은 왕을 대신해 공화정을 이끄는 최고 관직으로, 정권의 독점을 막고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2명을 1년 임기로 세나투스에서 선출했고, 콘술은 군인을 통치할 수 없었다.


►로마의 팽창이 가속화되면서 공화정의 핵심이었던 중산층은 비참하게 무너지는 대신 특권층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면서 로마공화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불평등이 만연했다.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오늘날의 정당과 유사한 조직인 포플라레스(Populares-진보당)와 옵티마테스(Optimates-보수당)가 생겼다. 포플라레스와 옵티마테스는 오늘날 정당처럼 선거를 통해 주도권을 주고받았는데, 사회 자체가 이처럼 양분되는 것은 역사상 로마가 처음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도권 싸움은 점점 더 과격해지고 더욱 극단으로 치닫아 마침내 로마공화정은 시민의 반란 등으로 무너진다. 현재에도 로마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지는데,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끊임없이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던 로마 역사를 안다면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의 멸망이후 유럽에는 1000년에 걸쳐 암흑의 중세기가 도래한다. 그러나 로마역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15세기 유럽은 로마의 지식, 인쇄기술,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등으로 다시한번 도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