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의 인생 노트

늙음에 대한 소회(所懷)-1

추동 2022. 6. 21. 08:15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피고 또 지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화려하게 푸르렀던 청춘의 세월들이 폭풍처럼 지나가나 싶더니,

어느새 삶의 마지막 문턱에 와 있는 80'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허허∼, 어쩌다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그 순간, 가슴을 옥죄는 통증과 함께, 몰려드는 깊은 울림에 가슴이 뻐근해진다.

그 울림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어찌 넘을까 하는 두려움, 지나온 삶에 대한 한없는 회한,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앞으로의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까 하는,

차마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수많은 상념(想念)들의 울림일 것이다.

 

허무(虛無)가 존재(存在)의 조건인 것처럼, 죽음은 삶을 삶 답게 하는 귀중한 전제(前提)가 될 것이지만,

그러나 삶의 끝은 결국 죽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의 존재 자체가 원천적으로 사멸(死滅)되는 죽음은, 내가 살아온 세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겪어야 할 처절한 고통(苦痛)과 사후(死後)에는 어찌되는 건가 하는 불확실성때문에 극심한 공포감(恐怖感)에 휩싸일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이다.

그중 노년(老年)이란 어찌 보면 생() 가운데 최고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노년은 풍부한 경험(經驗)과 넘치는 지혜(智慧)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기에 생의 종말을 맞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축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태어나는 자는 울지만 주위 사람들은 웃고, 죽어가는 자는 웃지만 주위 사람들은 우는 것이 생사(生死)의 풍경이 아니던가?

 

죽어가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죽음을 맞을 것인가?

죽은 자는 들을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기에, 사후(死後)에 찾아올 명성이나 찬사, 혹은 비난 같은 평판(評判)들은 당사자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생전(生前)에 겪었던 성공이나 실패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혹여 마음에 남아 있는 설렘이나 실패의 트라우마 같은 게 있다면, 죽기 전에 명쾌하게 털어내고 해방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와 새삼 다짐해 본다. 죽음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고∼.

죽음은 모든 생물체가 겪어야 하는 생명의 명확한 종결 단계가 아닌가?

그렇기에 80'이면, 죽음을 생각하고 서서히 세상과 이별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조의 인생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음에 대한 소회-취미활동  (0) 2022.07.12
늙음에 대한 소회-인간관계  (0) 2022.07.05
늙음에 대한 소회(所懷)-2  (1) 2022.06.28
국가 지도자의 자격  (0) 2022.06.14
선거(選擧)와 권력(權力)  (0) 2022.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