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상인으로 우뚝 서기 위해 혹독한 수련을 견뎌낸 옥례는, 김삼천 대방의 분부에 따라 함흥에서 경성(鏡城)으로 활동지역을 옮기게 된다. 경성은 함경도(咸鏡道)의 중앙에 위치한 제법 큰 도시다. 동쪽은 동해(東海) 바다와 면해 있고, 서쪽은 무산(茂山), 남쪽은 길주(吉州)와 명천(明川), 북쪽은 부령(富寧)과 접하고 있는 지역이다. 지세는 함경산맥(咸鏡山脈)이 서쪽에 위치하여 동북에서 남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어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해안선 내륙에는 비옥한 연안평야가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어, 아름다운 해변과 조화를 이루며 절경을 이룬다. 그곳에서 옥례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급하게 함흥 생활을 정리하고 경성에 당도한 옥례는 전임 행수로부터 경성면 중앙에 위치한 사무실이 딸려 있는 제법 규모가 큰 물품창고와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종사원들을 인계 받았고, 곧바로 영업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경성에서 전개해야 할 임무는 도호부(都護府)와 북병영(北兵營) 등 관청의 관급물자(官給物資)를 납품하는 것과 네 곳의 정기시장(定期市場)에서 판매될 상품을 공급하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우선 관청과 시장 상인들이 필요로 하는 물목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고, 해당 물량을 상단(商團)이나 산지(産地)로부터 제때에 확보하는 일 또한 시급했다. 특히 민가에서 원하는 새로운 생활용품(生活用品)과 신선한 식용품(食用品)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상단과 협의하여 사전에 물량을 확보하는 것 역시 옥례가 수행할 중요한 직무 중 하나였다. 이렇게 마련된 물품은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경쟁업체를 제압하여 관청이나 시장 상인에게 신속하게 공급해야만 했다. 이런 일은 반복하여 일어났는데,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는 것이나 다름없이 한시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긴박한 일들이었다. 깜빡 하는 사이 경쟁업체에게 상품 공급권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경성에 마련된 상담용 사무실과 널따란 창고는 영업활동을 하기에 매우 유용하게 꾸며져 있었고, 옥례를 보좌하는 서기(書記)를 비롯한 여러 명의 내거간(內居間–전속 상인) 및 인부들 역시 일사분란 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이 잘되어 있었다.
옥례가 머물 거처는 멀리 동해가 바라보이는 주을온천(朱乙溫泉) 인근에 아담한 고옥이 숙소로 주어졌다. 고옥은 부락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어 인적이 드물고 적막감이 감도는 조용한 곳이었다. 전쟁을 치르듯 바쁜 일과를 보내는 옥례에겐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이 집은 김삼천 대방이 가끔씩 들러 온천욕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던 그의 별장 가옥이었는데, 특별히 이를 옥례의 거처로 내준 것이다.
경성의 상권은 국경이 멀리 떨어져 있어 타지(他地)를 상대로 하는 무역 상거래는 거의 없었고, 주로 경성군 산하의 면소재지에 흐트러져 있는 크고 작은 시장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어 시장 상인들과 밀착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옥례는 시장상인들과 친분을 높이기 위해 밤낮으로 뛸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시장 상인들은 옥례를 환영했다. 남성상인들은 그저 바라만 봐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그녀의 몸매와 미모 때문이었고, 여성상인들은 워낙 붙임성이 많은 옥례에게 같은 여성으로써 호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아름다운 얼굴에 흐르는 옥례의 맑은 미소에는, 누구도 어떤 것도 그녀를 거역할 수 없게 하는 마력 같은 것이 있었다.
옥례는 여류상인이 가기 어려운 성공 가도를 일단은 평탄하게 걷기 시작한 것이다.
남존여비사상이 팽배한 조선사회에서 여인이 직업을 갖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관례상 궁궐에서 잡부 노릇을 하는 궁녀가 아니면, 기방(妓房)에서 남자들을 접대하는 기녀들이 그저 직업인으로 인정받고 있을 뿐이다. 모두 남성들에게 매달려 그들의 노리개가 되거나 혹은 수발하는 일이 전부였다. 물론 법으로 제한된 것은 아니지만 여자의 신분상 직업을 갖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유독이 물건을 팔고 이문을 얻는 시장 장바닥의 산매(散賣–소매) 장사치 중에는 여인들이 제법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물건을 사려는 고객 중에는 여염집 규수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남녀간에 내외(內外) 의식이 엄격했던 풍조 때문에 시장에 한해 여성상인들이 여성고객을 상대로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지역 경성(鏡城)은 옥례에게는 고향과 같은 곳이다.
엄니를 비롯하여 대대로 이곳 경성도호부(鏡城都護府) 관아에서 관노비(官奴婢)로 살아왔던 곳이기 때문이다. 매우 부끄러운 과거였지만, 다행히 임진왜란과 국경인(鞠景仁)의 난동으로 노비문권(奴婢文券)이 모조리 불타고 없어졌기 때문에 옥례의 집안이 노비 집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옥례의 신분은 자연스럽게 농사꾼의 후손인 양인(良人–평민)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에게 신분상의 제약은 아무것도 없었다.
경성에는 큰 시장으로 경성(鏡城)∙주을(朱乙)∙회문(會文)∙수남(水南) 등 4개의 정기시장(定期市場)이 열린다. 그 중 경성도호부 관아가 있는 경성면에 가장 규모가 큰 상설시장(邑場)이 열리고 있다. 물론 4개의 시장 모두가 닷새에 한 번씩 5일장으로 서지만 경성시장(鏡城市場)은 농산물과 잡화 상점을 중심으로 일상용품 시장은 매일 문이 열리고, 가축시장이나 수산물시장, 채소 및 산물(山物) 등은 닷새에 한번씩 함께 열려 성황을 이룬다. 주을시장(朱乙市場)은 5일장으로, 주을온면(朱乙溫面)에 위치하고 있는데, 산간벽지에서 채집된 송이∙산나물∙약초 등 산물(山物)시장과 수산물시장이 열리고, 부근에 온천 지대와 탄광 지대가 있어 매매 물량이 제법 큰 시장이다. 바로 옥례의 거처가 있는 곳이다.
회문시장(會文市場)은 명태∙대구∙고등어∙꽁치∙정어리∙가자미 등 수산물시장이 유명하고, 수남시장(水南市場)은 규모가 큰 우시장(牛市場)이 열린다.
옥례는 이들 시장의 상점을 손바닥 보듯 흩어 내리며, 상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접선하며 그야말로 백년지기나 되는 것처럼 친밀도를 밀착해가고 있었고, 판매물량은 전임 행수 때보다 서너 배 이상으로 늘어나 대방과 상단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런 옥례를 이를 갈며 노려보고 있는 무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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