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의 역사기행

(제4화) 송강(松江) 정철의 ‘영자미화(詠紫薇花)’

추동 2020. 10. 8. 08:27

의기 강아의 묘지

 

<영자미화(詠紫薇花)>

 

一園春色紫薇花(일원춘색자미화)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피니

 

纔看佳人勝玉釵(재간가인승옥채)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莫向長安樓上望(막향장안누상망)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

 

滿街爭是戀芳華(만가쟁시연방화) 거리의 사람들 모두 다 네 모습 사랑하여 다투리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이 ‘강아(江娥)’를 위해 지은 한시 ‘영자미화(詠紫薇花)’, 곧 “자미화(紫薇花)를 노래함”이란 한시(漢詩)이다. 자미화는 무려 100일 동안이나 핀다는 배롱나무, 즉 ‘목백일홍’을 말한다.

강아는 송강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남원의 어린 기생으로 본명은 자미(紫薇)였고, 불리는 이름은 ‘진옥(眞玉)’이었으나 정철의 호인 송강의 ‘강(江)’자를 따라 ‘강아’라고 불렸다.

 

송강은 강아를 만나 머리를 얹어주고 하룻밤을 같이했으나, 사랑스러운 딸같이 대했다고 전해진다. 정철은 어리지만 영리한 강아를 매우 귀여워하여 한가할 때면 자신이 지은 ‘사미인곡’을 들려주고 ‘장진주’ 가사를 가르쳐 주며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강아는 기백이 넘치고 꼿꼿한 정철의 다정한 사랑을 받으면서 그를 마음 깊이 사모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철이 도승지로 임명되어 10개월 만에 다시 한양으로 떠나게 되었고, 정철이 한양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강아는 그를 붙잡을 수도, 쫓아갈 수도 없는 자신의 신분과 처지에 낙담한 채 체념의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러한 강아의 마음을 헤아린 정철은 한양으로 떠나면서 작별의 시 ‘영자미화(詠紫薇花)’를 지어 주며 그녀의 마음을 위로했다. 강아는 이후 정철을 향한 그리움으로 긴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 후 강아는 송강에 대한 연모의 정이 깊어 함경도 강계로 귀양 가 위리안치 중인 송강을 찾아갔으나,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선조임금의 특명으로 송강은 1592년 7월 전라·충청도 지방의 도체찰사로 임명된다.

강아는 다시 송강을 만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적진을 뚫고 남하하다가 적병에게 붙잡히자 의병장 이량(李亮)의 권유로 자기 몸을 조국의 제단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적장 소서행장(小西行長)을 유혹, 아군에게 첩보를 제공하여 결국 전세를 역전시켜 평양 탈환의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 후 더 이상 정철을 섬길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생각한 강아는 머리를 깎고 출가해 여승이 된다.

 

소심(素心)이라는 이름으로 수도생활을 하던 강아는 정철이 사망하자 정철의 묘소(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를 찾아 묘를 지키며 돌보는 시묘생활을 하며 여생을 보내다 결국 그 곁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나중에 정철의 묘는 충북 진천으로 이장되었으나, 강아의 묘는 그대로 정철의 처음 묘가 있던 송강마을에 남아있다.

오늘날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송강마을에는 송강 정철을 기리는 송강문학관과 더불어 강아의 무덤이 있어 정철과 강아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