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끝없는 여정"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6

추동 2020. 7. 20. 15:28

경성부사 정웅진을 생포하려는 왜병의 앞잡이 국경인 반도

 

 

창분은 산채로 가는 길목에서 마침 대덕산에서 내려오던 박웅기 아재비와 맞닥뜨린다.

아마도 아침 일찍 순옥을 대덕산 초옥(草屋)으로 데려다 주고 이제야 내려오는 모양이었다.

 

“아, 아재비––! 아재비–, 큰일 났어요!”

 

“아니, 창분이 아니냐! 그런데 왠 호들갑이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것이야?”

 

“저기––, 왠 장정들이 부사 어른을 잡아야 한다며 산을 온통 뒤지고 난리가 났어요. 아마 소문에 돌던 반도(叛徒)들인 모양이에요. 빨리 피하셔야 해요, 빨리요––!”

 

“뭐라고? 반도들이라고? 알았다. 빨리 부사 영감께 알려야겠다. 어서 가자.”

 

마침 정웅진 부사는 산채 밖 바위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하~, 결국 이대로 나라가 망하고 마는 것인가!”

 

하며 비통한 심정으로 시름에 젖어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황급히 달려오는 박웅기와 창분을 발견하고는 드디어 일어날 일이 터졌구나 직감하고 바위에서 벌떡 일어난다.

 

“부사 어른, 큰일 났습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반도들이 부사 어른을 찾으려고 이 산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합니다.”

 

박웅기의 설명을 들은 부사 정웅진은 사색이 되어 되묻는다.

 

“무엇이라고––, 반도들이라고? 그럼 국경인(鞠景仁) 반도들 아니냐? 몇 명이나 되더냐?”

 

“제가 보기로는 여남은 명은 족히 넘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들 손에는 몽둥이며 곡괭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머뭇거리다가는 큰 변을 당할는지 모릅니다. 빨리 피하셔야 위험을 면할 수 있습니다. 어서요!”

 

창분이 산중에서 자신이 본 장정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는 동안 산채 안에 있던 마님이 밖이 시끄러웠던지 밖으로 나왔다가 이 사실을 듣고는 놀라서 기절초풍을 한다.

 

“웅기야!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이곳 말고 어디 피신할 만한 곳이 있더냐?”

 

“반도들을 피하자면 지금으로선 대덕산으로 올라가는 길 밖에 다른 도리는 없습니다. 대덕산은 워낙 산세가 험준해서 그곳으로 피신하리라고는 반도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행이 야트막한 지름길을 제가 알고 있어, 여기서 오르시기엔 그리 어렵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곳에 오르시면 화전민이 살던 산촌이 일부 남아 있어, 위난을 모면하시기에는 아주 적합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이렇다 저렇다 따질 여유가 없습니다. 식량과 덮을 거리만 가지고 어서 올라가셔야 합니다.”

 

다른 도리가 없으니 아침에 순옥이 올라간 대덕산 중턱의 산촌으로 올라갈 모양이다.

 

급하게 산으로 올라갈 채비를 마칠 즈음, 박웅기 아재비가 부사와 마님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창분을 불러 세운다. 그리고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분부한다.

 

“창분아––! 내 말을 잘 듣거라. 너는 여기에 남아서 뒷일을 잘 수습해주어야 겠다. 잠시 후에는 반도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그리고 너에게 부사 어른의 행방을 대라고 몰아붙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고 내가 이르는 대로 차분히 대답해야 한다. 부사 어른은 이틀 전에 삼수군(三水郡)으로 떠나셨다고 전하거라. 삼수에 관군들이 들어와 평온을 되찾았다는 전갈을 받으시고는 황급히 그곳으로 떠나셨다고 대답해야 한다. 어떻게든 반도들을 삼수군 쪽으로 유인해야 한다. 이점을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부사 어른도 마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게 네게 달렸다는 듯 창분의 표정을 바라본다.

 

전혀 예상도 못하고 있다가 엉겁결에 산채에 홀로 남게 된 창분은, 부사가 잘못되면 자신들 또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믿은 나머지, 스스로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치며 부사 가족이 떠난 산채를 지키는데 목숨을 건다. 그러나 그녀 역시 연약한 여인인지라 밀려오는 공포감을 떨쳐낼 수 없었고, 나름 이를 견디기 위해 몸을 떨며 어금니를 앙다물어야 했다.

 

부사 일행이 산채를 벗어나기 무섭게 무기를 든 장정들이 밭은 숨을 식식거리며 들이닥친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슨 승냥이라도 되는 양, 살기가 등등하여 산채 주변과 집안 곳곳을 뒤지며 부사의 흔적을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용케도 부사 어른 일행은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벗어난 듯싶었다.

혼자 남은 창분을 앞에 세워놓은 반도의 수령인듯한 사내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목청을 높인다.

 

“양민이 해방되려면 우리를 핍박하던 경성 부사 정웅진을 처단해야 한다. 그자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바른대로 말해라. 바로 고하지 않으면 너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체격이 유난히 장대한 사내가 창분에게 으름장을 놓았지만, 그러나 창분은 이미 마음을 굳힌 뒤여서 그들의 협박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부사 어른은 이틀 전에 가족과 함께 삼수군(三水郡)으로 떠나셨습니다요. 그곳에 관군들이 집결했다는 전갈을 받으시고는 부랴부랴 그곳으로 떠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요.”

 

관군 소리가 나오자 청년은 사뭇 놀라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삼수에 관군이 집결했다고? 그곳이 삼수군 어디쯤이냐?”

 

“저 같은 노비가 무얼 알겠습니까요? 부사께서 떠나시며, 변란이 곧 평정될 터이니 산채를 잘 지켜야 한다고 분부를 하셔서 여기에 남아 있을 뿐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