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연재

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19

추동 2023. 12. 4. 08:33

 

(3)

악연인가, 가연인가−5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소식을 들은 김 진사 댁 마님은 서연의 처지를 그저 몰라라 할 수만은 없는 입장인지라 갑진을 불러 아이를 어찌 돌봐야 할지 여러모로 의논을 하였다.

“순금이가 그 지경이 됐다니 어쩌면 좋으냐? 그 아인 왜 그리 박복한 것이냐? 참으로 딱한 일이야! 쯔쯔쯔~~! 결국 서연 어린 것이 지 어미 없이 홀로 살아야 하는데, 어찌 했으면 좋겠는지 네 생각을 예기해 보거라. 그냥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일 아니더냐?”

“글쎄요! 저도 아주 답답하기만 하네요. 이를 형에게 알릴 수도 없고--. 어떻게 하던 어린 것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겠어요?”

“네 형에게 알릴 생각은 아예 하지 말도록 해라. 공연한 풍파를 일으킬 필요는 없느니라!”

갑수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는 크게 역정을 내시며 입을 다물어버린다.

“아이를 집안으로 들일 수도 없으니 양식을 보내주고, 명이 할멈이 서연을 키우게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래.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내일이라도 명이 할멈을 불러 그리 부탁을 하마. 명이 할멈도 서연의 출생 비밀을 다 알고 있으니 그게 좋겠구나-.”

“그리고∙∙∙∙, 어머니! 서연에게 글을 가르쳤으면 하는데요! 서당에라도 보내는 게 어떨까요?”

“그게 무슨 소리냐? 계집에게 무슨 글을 가르친 단 말이냐? 팔자 사납게 시리!”

“어머니! 서연은 어차피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예요. 그러자면 무엇보다 글이라도 알아야 뭘 하든 먹고 살수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아무리 우리 가문과 상관없는 아이라고 선을 긋더라도 내막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을 텐데, 혹시 그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머니만 매정한 사람이 되지 않겠어요? 이런저런 걸 모두 덮어 나가자면 천상 그 아이에게 글을 가르쳐서 혼자 독립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도리일 것 같아요.”

“음--, 그래! 네 말을 들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인 듯싶구나. 알았다! 네가 서당을 알아봐서 그리 하도록 해라.”

결국 서연은 지금처럼 산수마을 집에서 명이 할멈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고, 신정리에 있는 서당 엘 다니며 글공부도 하게 되었다.

 

순금이 사라진 지 두어 달이나 지났을까? 서연이 신정리 서당에서 글공부를 마치고 산수마을로 넘어오는 언덕 길섶에 웬 사람이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지라 그냥 지나치려는 데 그 사람이 웃으며 아는 채를 한다.

∙∙∙∙∙? 누구지?”

흰 바지 저고리에 벙거지를 썼는데 왠지 어색해 보이는 아저씨였다. 가까이 앞을 지나면서 얼핏 쳐다보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서연아! 나를 못 알아보는구나--, 나 다카하시 오빠야~~!”

“아-∙! 다카하시∙∙∙∙∙∙.”

전에는 군복을 입었었는데, 조선사람처럼 옷을 입어 알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일본군 첩보요원이다 보니 이런 복장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저기--, 울 엄니 찾았어요? 울 엄니 데려온다고 했잖아요?”

서연 역시 엄니를 찾아주겠다는 기억이 떠올라 대뜸 말문을 연다.

“어? 그래, 지금 여기저기 찾고 있는 중이야. 한데, 아직은 못 찾았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꼭 찾아낼 게! 그런데 지금 어디서 오는 중이냐?”

“지금, 서당에 다니고 있어요. 글공부하고 집에 가는 길이예요.”

“어~~, 그래? 잘 되었구나! 집에는 너 혼자 지내고 있니?”

“아뇨! 할머니하고 함께 살고 있어요. 그런데 엄니는 꼭 찾을 수 있는 거예요?”

“그래! 반드시 찾아서 너에게 데려다 줄게. , 약속할 게!”

그러더니 바지 속에서 무엇을 꺼내 든다. 비단으로 만든 붉은 댕기였다.

“이거--! 머리에 매고 다녀. 오빠가 주는 오미야게(선물), 예쁘지?”

~~, 예뻐요. 매고 다닐 게요.”

“아~~, 이제 그만 가봐야 하겠구나. 다시 올 게! 울지 말고 씩씩하게 지내야 돼, 알았지? ”

다카하시는 아쉬운 듯 몇 번이고 서연을 바라보더니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사라진다. 서연 역시 멀어져 가는 다카하시를 몇 번이고 바라보며 왠지 남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반드시 엄니를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