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백성을 버린 임금−1
임금은 신립(申砬) 장군을 조선 최고의 맹장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조정 신료들은 물론 백성들 사이에서도 조선 영토를 굳건히 지켜낼 장수는 오로지 신립 장군뿐이라고 확신했고, 그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그러나 패장 신립이 탄금대 물속에 몸을 던져 자결하면서 충주 방어선이 뚫린 것은 온 나라의 믿음과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큰 충격이었다. 충주의 패보는 한양으로 향하는 왜군의 공격이 막힘없는 탄탄대로에 올라섰음을 의미하였으며, 동시에 조선의 국운이 풍전등화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임금과 조정 대신들에게 왜란을 막아낼 수 있는 방책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정에서는 황급히 회의를 열어 대책을 강구하기에 바빴지만, 실은 대책을 강구하기보다는 어디로 피신하는 것이 안전한가를 논의하는 것이 주된 의제였다.
임금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하여 당황하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은 서둘러 난리를 피할 방도를 세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무래도 왜적의 기세를 꺾기는 어려울 듯싶소. 애통한 일이긴 하나 일단 한양을 떠나 시간을 갖고 새로운 방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 같소. 경들의 의향은 어떠하오?”
우의정 유홍(兪泓)이 일어나며 반대했다.
“전하, 아니 될 하교이옵니다. 조종 이래 역대로 지켜오던 한양을 버리시면 어찌 한단 말이옵니까? 국운이 위기에 봉착한 것은 사실이오나, 한양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이옵니다.”
얼굴에 핏줄을 세우며 충심이 넘치는 듯 말은 하고 있으나, 자기 자신은 이미 도망갈 준비를 끝내 놓고 낌새를 보는 중이었다.
그러자 영부사(領府事-중추부 수장) 김귀영(金貴榮) 또한 나서며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전하! 한양을 버리시면 종묘사직은 어찌 한단 말이옵니까? 한양을 끝까지 지켜야 함은 조정의 지엄한 책무가 아니옵니까? 한양을 버리신다 함은 천부당 만부당한 분부이옵니다.”
계속해서 여러 조신들도 일제히 반대하며 부복한 채 소리 내어 통곡한다. 묘당의 분위기가 온통 무겁고 침통해지자 우승지 신집(申磼)이 나선다.
“전하, 우선 급한 것은 소란한 민심을 하루바삐 가라앉히는 일이옵니다. 그러자면 조속히 세자를 책봉하여 종사를 안정시켜야 할 줄 아옵니다.”
지극히 민감한 세자 건저(建儲-왕세자를 정하는 일) 문제를 우승지가 꺼낸 것은,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임금과 조정의 행태에 백성들의 분노와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세자책봉을 통해 국면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도였다. 그런 와중에도 후궁 인빈 김씨에게 빠져 있는 임금은, 마음 속으로 인빈이 낳은 신성군(信城君)을 세자로 낙점하고 있었다. 지난해 이맘때, 좌의정 정철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할 것을 주청하다가 임금의 미움을 받게 되어 강계(江界)로 유배, 위리 안치된 일이 있었던, 임금에겐 매우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지금은 사세가 급박하여 임금도 더 이상 노여움을 내색하지 못하고 영의정 이산해, 좌의정 유성룡 등에게 왕자 중에서 세자로 세울 만한 어진 자가 누구인지 골라보라고 말한다. 신하들은 누가 세자로서 적합한 지를 감히 발설하지 못하고 임금의 눈치만 살피는 형국이 되었다. 임금의 속뜻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임금 스스로 낙점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역사소설 연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22 (2) | 2023.12.25 |
---|---|
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21 (0) | 2023.12.18 |
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19 (2) | 2023.12.04 |
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18 (2) | 2023.11.27 |
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17 (4) | 2023.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