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부)
출생의 비밀−5
김 진사 내외가 충주 목사의 생일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비우고, 집안 식솔들조차 모처럼 친척들 찾아 외출하여 집안이 온통 비어 있는 어느 봄 날이었다. 마음이 풀리니 몸도 풀렸나─, 집에 혼자 남은 순금은 부엌에 딸린 작은 방에서 꾸벅꾸벅 졸더니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으~ 응~! 꿈속인가~~, ~~생시인가~~!”
밧줄에 온몸을 결박이라도 당한 것인가? 왠지 몸을 꼼짝 할 수가 없다. 입에 자갈을 물린 듯 숨을 쉬기도 어려웠고, 가위에 물린 듯 허우적거릴 뿐 손발이 움직여지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가슴은 시원하게 드러낸 듯 훤히 열려 있는 느낌이다.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인가?
“아아~, 아아---!”
어렴풋이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위에서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악--! 누·· 누--, 누구요? 비켜요!”
순금은 힘껏 소리를 내질렀으나, 입이 막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쉿~, 가만 있어, 나야~ 나-”
웬 사내가 순금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힘을 주어 벗어나려 해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큰 도령 갑수가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갑수는 순금의 저고리를 풀어 헤친 채 한 손으로는 가슴을 움켜지고 있었고, 한 손은 순금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겨우 갑수의 손을 입에서 떼어 낸 순금은
“도, 도련님! 왜 이러세요~. 비키세요~. 이러시면 안 돼요---. 제발!”
하며 애원을 했으나, 갑수는 성난 맹수처럼 더욱 맹렬하게 순금의 몸을 파고들며 압축해 온다. 완강하게 저항하던 순금은 순간 갑수의 얼굴을 응시하며 불현듯 엄니를 떠 올린다. 어린 순금을 발채에 밀어 놓은 채 숨가쁘게 남자를 끌어당기던 엄니가 생각난다. 삶의 무게가 가혹하여 견디기 어려운 절망 속에서도 엄니가 온몸을 솟구치며 하늘을 향해 부르짖던 순간은 바로 남자와 함께 하던 그때였음이 새삼 떠올랐다. 순금은 그런 엄니를 생각하며, 그렇게 하늘 세상을 향해 격렬하게 달려가야 하는 것이 여자의 길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모든 고통을 뛰어넘어 하늘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라 판단했다. 순금은 숨가쁘게 허겁지겁 파고드는 큰 도령 갑수를 받아들여야 그 뒤에 하늘 세상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지키기 위해 죽기 살기로 밀어내던 순금은, 순간 갑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성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가 원하는 대로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은 한없이 떨리고 공포와 고통이 전신을 휩쓸고 있어 견디기 어려웠지만, 그러나 온몸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기쁜 출렁임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순금의 몸에는 첫 남자 갑수의 진한 핏자국이 또렷이 새겨져 평생 동안 지워질 수 없는 아픈 자국으로 남는다.
한동안 순금을 품고 있던 갑수가 불현듯 방을 나가자, 그녀는 죽은 엄니의 환영을 맞아야 했다. 엄니는 저 만치 문 발치에 선 채, 가여운 딸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가슴을 칼로 베어 내듯, 몸 속의 액체를 모조리 쥐어짜듯 고통스러운 울림으로 한없이 한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딸도 엄니의 환영을 바라보며 서러운 듯 흐느끼며 함께 울었다. 모녀의 흐느낌은 점점 더 고조되더니 한탄의 울음소리로 변했고, 그들의 통곡소리는 끝없이 끝없이 세상을 향해 번져 나갔다. 엄니는 자신의 한스러운 팔자를 어김없이 빼 닮은 딸의 신세가 너무나 가련하여 견딜 수 없었고, 순금은 자신이 따라야 할 엄니의 인생 행로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 무섭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두 모녀가 세상을 향해 큰 몸짓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길은 이것뿐이라는 슬픈 하소연이 깃들어 있었다.
순금 엄니의 환영은 그렇게 오래도록 순금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았다.
사나흘이나 지났을까? 갑수가 가르쳐주는 순금의 글 공부는 더욱 잦아지고, 집안 사람들의 눈을 피한 두 남녀의 사랑 행위는 거침없이 깊어져 갔다. 그러나 갑수와 순금의 깊은 관계를 첫날부터 낱낱이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작은 도령 갑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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