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출생의 비밀−4
김 진사 댁에는 아들 둘이 있었다. 큰 도령 갑수는 순금 보다 서너 살 위였고, 작은 도령 갑진은 순금과 비슷한 나이였다. 특히 큰 도령은 자주 순금을 불러 잔심부름을 시켰는데, 이미 여자에 대해 눈을 뜬 갑수는 성숙해 가는 순금의 뒤 꼭지를 훔쳐보며 야릇한 상상으로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순금 역시 그런 갑수의 예사롭지 않은 시선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아, 참! 순금이 너, 글 읽을 줄 모르지? 내가 글을 가르쳐줄 테니 우선 언문을 익혀보는 게 어떻겠냐? 나중에는 천자문도 익히고, 소학도 읽어보는 게 좋을 듯싶구나.”
순금을 가까이하고 싶은 갑수는 이런저런 핑계로 말을 붙이며, 책장을 뒤지더니
“옛 따! 여기 언문 책이 있으니 꼼꼼히 배워야 한다. 알겠지?”
하며 전에 읽던 언문 책 한 권을 순분에게 던져준다.
“정말이어요? 큰 도련님! 제가 정말 글을 배울 수 있을까요?”
창졸간에 엄니를 잃고 한 동안 초점 없는 눈망울을 땅바닥에만 맞추며 지내던 순금 얼굴에 이제야 조금씩 웃음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갑수의 갑작스러운 친절에 황감한 나머지 책을 주어 들고는 무릎을 끌고 앉아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며 나름 고마움을 표시한다. 하얀 얼굴이 어느새 발그레해지며 좋아했고, 이런 순금의 응대를 바라보면서 갑수 역시 기분이 뿌듯했다.
“그럼! 배울 수 있지 않고-. 언문 떼고, 천자문 떼는 것은 네 하기에 달렸으니 틈나는 대로 애를 써보거라!”
갑수의 순금에 대한 관심은 아주 각별했고, 그 덕에 순금은 언문이며, 천자문, 소학 등 대하기 어려운 서책을 가까이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사실은 진사 어른도, 마님도, 집안 누구도 모르게 이뤄졌다. 막서리 종년 주제에 글을 터득한다는 것은 애당초 가당치 않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작은 도령 갑진도 순금을 바라보면 왠지 얼굴이 상기되며, 가슴이 두근거려 견딜 수 없었다. 그 또한 차츰 이성을 느끼기 시작할 나이가 되었고, 희고 예쁜 순금을 생각하면 알 수 없는 떨림이 가슴에 차 올랐다. 더구나 형이 자주 순금을 글방으로 들이는 것을 발견하면 왠지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형은 무너트려야 할 적이라 생각했고, 형으로부터 순금을 지켜야겠다는 결심 또한 점점 굳어졌다.
갑진은 가끔씩,
“순금아! 이거~.”
하면서 읍내에서 사온 찰 엿을 남몰래 순금의 손에 쥐어 주기도 했다.
은연중에 갑수와 갑진 형제는 순금을 가운데 두고 서로 적대감을 품는 연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엄니 잃은 절망의 세월 속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순금은, 수줍은 듯 말수도 늘고 웃음기도 잦아졌으며 몸매도 유난히 숙성하여 무르익은 과일처럼 처녀티가 완연했다. 그녀의 복숭아 빛 자태는 부자마을 뭇 남성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도 남았다.
세상에서 처음 순금의 몸을 아프게 한 남성은 김 진사 댁 큰 도령 갑수였다. 아마 순금의 나이 열 일곱이나 되었을 땐 가--? 갑수는 이미 혼인한 몸이었으나, 성정이 거칠고 못된 며느리는 혼인 직후 시부모의 눈 밖에 나 친정으로 쫓겨났고, 갑수는 총각처럼 혼자 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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