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연재

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7

추동 2023. 9. 11. 08:09

 

(2)

출생의 비밀−2

 

그러나 순금(順錦)의 엄니에게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내력이 있었으니, 그녀의 어머니도 그랬고 자신도 그렇듯이 태생적으로 뜨거운 성녀(性女)의 피가 그녀의 몸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철이 들면서부터 그녀의 몸은 성적(性的) 상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성년에 이르러서는 홀로 밤을 지새기엔 너무나 팽팽하여 터지기 직전의 화염 덩어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몸이 부풀어 있었다. 그런 탓에 지금도 깊은 밤 그녀 곁에는 숨겨진 남성들의 그림자가 자주 어른거렸다. 하지만 순금 어미의 집에 남자가 드나드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외지 사람이 들어오기 어려운 산골마을에서 어느 집 서방과 순금 어미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라도 도는 날에는 순금 엄니 모녀는 당장 이 마을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순금 엄니의 남성 편력은 주로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이루어졌다. 그만큼 그녀는 뜨거운 욕망을 견디지 못하는 뜨거운 여인이었다. 어린 순금은 간혹 생면부지의 아저씨를 잠결에 목격하곤 했지만 캄캄한 밤중이라 그가 누구인지 얼굴을 익힐 수 없었다. 순금에겐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진 아비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었기에, 엄니 옆의 남성에 대해 어른들의 세상은 다들 그런 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순금 어미는 견문산 산자락에 손바닥 만한 땅을 일궈 밭농사를 지었고, 봄이면 달래강 주변에 지천으로 깔린 봄 나물을 캐내어 충주 장에 나가 팔기도 하며 모녀의 호구를 해결했다. 물론 두 식구 호구지책으로는 어림도 없이 부족했기에, 그녀는 곧잘 산 넘어 김 진사 댁에 가서 허드렛일을 거들고는 품삯을 받아 호구를 채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진사 댁 집사인 천 서방이 순금 어미를 자주 불러 집안 막서리처럼 일을 시키곤 했기 때문이다. 천 서방은 김 진사 댁 큰 살림을 두루 꾸려 나가고 있는 사십이 갓 넘은 건장한 남성이었다. 집안에 여러 명의 하인, 하녀가 식솔로 붙어살고 있었지만, 순금 어미의 억세고 야무진 일 솜씨가 오롯하여 천 서방은 그녀를 자주 불러 이것저것 집안일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종종 김 진사 댁에서 잔치가 벌어지는 날이면 산수마을 아낙들이 음식 준비에 모두 동원되기도 했는데, 이때 순금 어미는 음식을 준비하는 아낙들의 주모가 되어 잔치준비를 이끌 정도로 진사 댁 살림에 역할이 컸다.

 

이태 전에 홀아비가 된 천 서방은 활달한 순금 어미에게 남다른 호감을 키워 오다가 지난 겨울 오밤중에 순금 어미의 외딴집을 찾기 시작하여 둘은 이미 여느 관계가 아니었다. 특히 순금 어미 모녀를 각별히 돌 봐주라는 진사어른의 분부까지 받고 있는 터라 거리낌 없이 두 모녀에게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엄니가 진사 댁에서 일을 하는 날이면 어린 순금도 하루 종일 그 댁에 가서 잔 심부름을 하며 지내야 했다. 어려 서부터 용모가 빼어나게 예쁘고 고운 순금을 진사어른은 물론 마님도 꽤나 귀여워했다. 특히 진사 댁 큰 도령과 작은 도령은 경쟁하듯 순금의 곁을 좀체 떠나려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