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자왈), 君子(군자)는 食無求飽(식무구포)하며, 居無求安(거무구안)하며, 敏於事而愼於言(민어사이신어언)이요, 就有道而正焉 (취유도이정언)이면, 可謂好學也已(가위호학야이)니라】
(군자는 먹는 것에 배부름을 구하지 아니하고, 거처하는 것에 편안함을 구하지 아니 하며, 일은 민첩하게 하고, 말은 신중히 하며, 도(道) 있는 이에게 나아가 나를 바로잡으면, 그런 사람에게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할 만하다.)
젊은 시절 각종 역경을 견디며 학업(學業)에 정진하는 것은, 오로지 의(衣), 식(食), 주(住)에 대한 최상(最上)의 조건을 터득하여 잘 사는 성년(成年)을 이루겠다는 육체적(肉體的) 욕구(欲求)가 목표(目標)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물욕(物慾) 등 육체적 욕구에서 벗어나 정신적(精神的)으로 행복(幸福)한 삶을 이루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배움의 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학업의 목표를 좋은 조건의 의식주(衣食住) 실현 등 육체적 욕구에만 두는 것은 속물(俗物–교양이 부족하고 야비한 사람)로 가는 지름길을 찾는 격(格)이며, 결국 한없이 불행(不幸)의 늪으로 빠져드는 길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좋은 음식과 의복, 그리고 큰 집을 갖는 것에 온통 집착(執着)하여, 학업에 정진하는 자녀(子女)들에게 이를 배움의 목표로 삼도록 강요한다.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대궐 같은 집에서 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며, 이것이야 말로 인생(人生)의 성공(成功)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지표(指標)라고 가르친다. 결국 그런 부모(父母)는 귀(貴)한 자녀를 불행의 길로 이끄는 앞잡이가 되고 만다.
배움을 통해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단련(鍛鍊)하여 생각을 깊고 넓게 펼쳐야 하는 인생역정(人生歷程)에서 맛 있는 것과 화려한 옷, 그리고 큰 집에 대한 욕구(欲求)는 이 모든 것을 일시(一時)에 중단시켜 스스로를 가치(價値) 없는 3등 인생으로 전락(轉落)시킨다. 그리고 인생 끝에 내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인생무상(人生無常)과 허무(虛無)를 부르짖는다.
배움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육체적 욕구에 대한 억제력(抑制力)이 강(强)해지고, 물질적(物質的) 경쟁(競爭)에서 벗어나게 된다. 주변의 지인(知人)들과 공존(共存)하기 위해 헌신적(獻身的)으로 일하는데 보람을 느끼게 되고, 따라서 나 자신을 과시(誇示)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말수가 줄어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더욱 깨우치기 위해 앞서가는 이를 본받아 자신을 채찍질하여 공부하며 정진(精進)하게 된다. 따라서 자연히 학업을 즐기며 좋아하는 모범생(模範生)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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