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3) 북궐도(경복궁 전도)⇒노란글씨는 현재의 전각 이름,
붉은 글씨는 일제강점기 때 멸실 된 전각 이름
3. 숨소리조차 정지된 경복궁 분위기
경복궁은 임금과 왕실가족들, 그리고 임금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관리(官吏), 임금의 신변을 보호하고 궁궐을 방어하는 군사(軍事) 등 수천 명이 상주하고 있었고, 공무와 사무 등 업무를 위해 출입하는 각계각층의 비상주 인구까지 포함하면 하루에도 만여 명 가까운 인원이 이곳 궁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정교(政敎)의 핵심 영역이다. 경복궁은 국정을 총괄하는 국가 최고 기관으로서 엄중한 권위와 위상을 지니고 있었고, 수도인 한양을 비롯한 전국토의 모든 기능은 경복궁에서 시작하여 경복궁에서 끝나는 명실공히 한반도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자연히 궁궐은 여느 인간집단과 마찬가지로 강한 자와 약한 자, 선(善)과 악(惡)의 무리가 서로 부딪치고 다투면서 드라마틱한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스토리를 끊임없이 생성해 내는 치열한 공방(攻防)의 영역이었다. 따라서 궁궐에는 인정 넘치는 따뜻하고 밝은 사연들이 있는가 하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이전투구(泥田鬪狗)와 권모술수(權謀術數)의 추악한 그림자들도 함께 공존하는 선과 악의 각축장(角逐場) 같은 곳이었다.
경복궁 12만여 평의 영역은 임금과 왕실가족들만 출입할 수 있는 금단(禁斷)의 공간이 전체 영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영역에는 3백여 동(棟)의 관청과 생활 건축물이 빼곡히 들어선 채 그 안에서 수많은 관리와 궁인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바쁘게 근무해야 하는 비좁고 숨막히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넓디넓은 궁궐은 지존(至尊)이신 임금이 상주하는 곳이어서 대전(大殿) 영역에서나 드물게 큰 소리, 웃음소리가 들려올 뿐, 문무백관을 포함한 수많은 궁인들은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주고받아야 했으므로 궁궐은 항상 숨이 막힐 정도로 적막강산(寂寞江山)을 이루는 침묵의 공간이었다.
다만 궁궐 내에서 인적(人跡)을 알리는 두 가지 허락된 소리가 있었으니 하나는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요, 다른 하나는 억제된 헛기침 소리였다. 조선시대에 인기척을 감추는 일은 범죄인의 소행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궁궐 바닥에 백토를 깔고 신발은 가죽신을 착용하여 사각사각 하는 걷는 소리를 내면서 수시로 헛기침 소리를 내어 자신의 인적을 드러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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