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아침, 광화문이 열리다

궁궐의 아침, 광화문이 열리다(제1회)

추동 2019. 8. 5. 09:40

 

 

(경복궁 근정전 조정에서 벌어지는 국왕에 대한 충성맹서-조참의례)

 

[시작하는]
 서울에는 다섯 개의 조선궁궐이 있다. 대부분 일제에 의해 참혹하게 파괴되어 흔적 조차 사라질 뻔 했지만 다행히 불씨가 남아 이를 조금씩이나마 되살리고 있다. 캄캄한 터널 속 같은 우리 역사의 진상을 궁궐을 통해살려볼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그 대표적 궁궐이 법궁으로 일컬어지는 경복궁이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지나 중문인 흥례문을 들어서면 서(西)에서 동()으로 금천(禁川)이 흐른다.북악산의 정기를 품은 명당수로 알려져 있는 금천의 주변에는 아름답고 그윽한 향기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가 에워싸고 있다.
 
북풍한설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운다고 해서 설중매(雪中梅)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매화나무는, 어떤 어려움도 이기고 견디며 절개를 지키는 나무로 흔히 비유된다. 충효와 절개를 으뜸 덕목으로 치는선비의 나라 조선의 정신을 가장 잘 상징하는 나무가 바로 매화나무인 것이다. 경복궁에서 처음 맞아주는 매화나무를 통해 조선의 정신을 느끼게 된다.
 
조선의 역사가 살아있는 현장, 궁궐(宮闕)에는 수백년 전에 지어진 고색창연한 전각(殿閣)들이 한민족 특유의 중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고, 건물과 나무 등 각종 구조물 하나 하나에는 선비정신과 사람이 지켜 가야할 도리가 깊게 계시되어 있어 교훈을 주고 있다. 따라서 궁궐은 외형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역사적 가치를 보여주는 자랑스럽고 귀중한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때 그 시절 궁궐에서 머물던 수많은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연(事緣)들을 가슴에 안고 삶을 살았는지, 당시의 사람들 이야기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말하자면 궁궐건물의 역사는 눈앞에 현란하게 펼쳐져 있지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역사는 숨겨진 채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궁궐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보다 더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파노라마 같은 인생역정(人生歷程)펼치면서 생사고락(生死苦樂)을 나누었던 치열한 삶의 현장이며, 조선의 생활문화(生活文化)가 압축되어 있는 살아 있는 역사 현장이다.
 
궁궐의 주인인 임금은 자신의 절대적 권위를 지키기 위해 한시도 마음 놓을 새 없이 정략(政略)을 펼치지 않으면 안 되었을 테고, 정승 판서 등 고관대작들 또한 나름대로 숨 가뿐 긴장 속에서 자신의 권세와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계략(計略)을 꾸미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또한 일반 관리들은 관리들 대로 더 나은 영달과 안정을 찾기위해 상대를 비하하며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고, 비빈(妃嬪)과 궁녀들 또한 혹여 상전과 남정내의 마음이 멀어지지나 않을까 애태우며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곳, 그곳이 바로 궁궐이다.
 
분명 궁궐에는 지존(至尊)인 임금을 향한 대신들의 목숨 건 줄타기가 있었을 것이고, 출세를 향한 관리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끊임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또한 궁궐의 규방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남녀간의 애증(愛憎)이 불꽃을 튀겼을 것이고, 여인들의 미소 뒤에는 표정 감춘 투기와 간교가 횡행했을 것이다.
 
궁궐 속에는 이러한 사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범인(凡人)의 세상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상류사회의 갖은 속태(俗態)들이 횡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체들은 어느 순간 모두 침묵으로 감추어져 어디엔가 묻혀진 채, 지금은 덩그런 궁궐 전각(殿閣)들만이 세월의 때를 덕지덕지 떠 안은 채 외롭게 서있을 뿐이다.
 
그러나 궁궐의 참모습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의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을 찾아내어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거동과 음성을 재현시키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실연(實演)을 전개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옛 사람들이 다시 깨어나 움직이며 궁궐 속에서 활보하지 않겠는가?
 
물론 궁궐에는 수백 년 전에 구현된 독특한 건축기법을 발견할수 있고, 아름답게 구성된 전각들의 미학적(美學的) 구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편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산수경관(山水景觀)을 감상할 수 있고, 실용적 용도와 동선(動線)에 맞춘 편리한 건물배치를 실감할 수 있다. 이렇게 궁궐에는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건축 솜씨와 예인(藝人) 감각을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로 궁궐에서 바라본 조선왕실의 사랑과 미움, 그리고 당시 궁궐에서 생활하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벌렸던 정쟁과 삶의 애환을 파고들어 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이와 함께 궁궐 건축의 과학적 지혜와 전각의 실용적 아름다움, 건축물에 새겨진 각종 정신적 염원의 표현들을 그들의 삶과 연계시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계기로 우리역사에 대해 무관심의 괘도를 영리한 길로 여기던 수많은 이웃들에게 불꽃같은 나라 사랑의 작은 씨앗이 되고 싶다. 
                                                                        일조(一朝)  이 효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