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아침, 광화문이 열리다

궁궐의 아침 광화문이 열리다(제2회)

추동 2019. 8. 8. 16:06


(사진-1) 조선의 아침이 열리는 곳, 광화문




1부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경복궁(景福宮)


 


1. 궁궐의 아침, 광화문이 열리다.


 임금을 정점으로 한 궁궐의 하루 일과는 새벽녘 해뜨기 전부터 시작된다. 특히 궁궐의 아침을 가장 먼저 여는 사람은 궁궐을 방어하고 임금을 경호하는 궁궐 수비대의 군관들이다. 야간근무를 마친 군관들과 주간에 근무할 군관들의 교대식이 궁궐 내의 다른 기관들보다 가장 일찍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궐 문을 지키는 수문장과 수문병들은 대궐을 출입하는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므로 특별히 선발된 신체조건이 건장한 병사들이 담당하였다.


 


박치묵(朴致默−정5품ㆍ36세ㆍ적선방 거주)이 근무처인 수문장청에 출근한 시각은 인시(寅時)였다. 지금으로 치면 새벽 4시쯤이다. 광화문을 지키는 수문병들을 지휘하는 수문장 박치묵은 어제 새벽 5시에 퇴근하여 하루를 쉰 후 오늘 새벽에 출근했다. 밤샘 근무를 한 야간 근무조와 교대식을 마친 박치묵은 승정원에서 광화문 열쇠를 수령하여 궁궐수비를 총괄 감독하는 내병조와 궁궐의 실질적 수비부대인 도총부가 함께 입회한 가운데 묘시(새벽 5)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광화문을 활짝 개문한다.




문밖에서 입궐을 기다리던 궐내각사(闕內各司)의 당상관급 고위 관리들 중 문관은 삼문인 광화문 동쪽 협문으로, 무관은 서쪽 협문으로 수문장 박치묵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받으며 입궐을 시작한다. 광화문의 중앙문은 임금의 전용문이다. 중ㆍ하위직 관리들과 궁인들은 궁궐 동쪽의 건춘문(建春門)과 서쪽의 영추문(迎秋門)을 통해 5시면 모두 출근을 완료한다. 그들은 모두 신분을 나타내는 호패(號牌)를 수문장에게 보인 후에야 출입이 허락된다.


 


큰 체구에 호탕한 인상으로 주위를 압도하는 박치묵은, 10여 년 전 무과에 합격하여 무관이 되었고, 왜구를 소탕하는 전투에 참전하여 큰 무공을 세운 후 임금으로부터 포상을 받고 발탁되어, 1년 전부터 광화문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수문장직은 임금의 지명에 의해 임명되는 중요한 자리다.


 


궁궐의 수비와 임금에 대한 경호는 주야를 막론하고 그야말로 철통과 같이 이루어 진다. 내병조에서 지휘하는 금군(禁軍)과 오위도총부에서 지휘하는 정규군 등 2천여 명의 군사들이 궁궐 내부의 내∙외전(임금의 정전인 근정전, 편전인 사정전, 침전인 강녕전) 주변을 물샐 틈 없이 경비하고 있고, 별도의 오위도총부 소속 정예군들이 궁궐 외곽을 완벽하게 둘러싼 채 방어선을 펼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매일 새벽 5시가 되면 수천 명의 관리 및 궁인들이 하나같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궁궐 문으로 입궐하여 제자리에서 직무를 시작한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궐내각사의 건물에는 수천의 문무관리들과 궁인들이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운 채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묵묵히 제할 일만 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관리들 중에는 숨 막히듯 무거운 궁궐에서 근무하다 보니 아예 귀가할 생각을 포기하고, 궁궐 문이 닫히는 유시(저녁 7) 이전에 광화문 앞 육조거리 동편의 밥집에서 급하게 저녁식사를 때우고는 궁궐로 되돌아와 잔무처리를 하다가 새우잠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이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한양의 하루는 새벽 4시에 파루(罷漏)가 울리는 가운데 도성 문이 열리면서 시작되지만, 궁궐과 육조거리는 침묵과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광화문이 열리면서 서서히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조선 천지가 기지개를 펴면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