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탐방

하동(河東) 샘골(井戶) 막사발

추동 2019. 8. 9. 11:23


이도다완(井戶茶碗), 일본(日本)의 국보(國寶) 26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동(河東) 샘골(井戶) 막사발


 다완(茶碗)은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잔() 또는 사발을 말하는데, 다도(茶道)가 유행했던 일본 귀족층에서 사용되는 다완(茶碗)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 조선에서 전래된 것,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 등 세가지로 구분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다완은 조선의 다완이다.


 


일본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조선 다완은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이도(井戶), 운가쿠(雲鶴-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청자 다완), 고모가이(熊川-경남 진해 웅천에서 유래된 다완), 고키(吳器-제사 때 사용하던 목기와 유사한 다완), 도토야(魚屋-철분이 많은 적갈색의 태토에 푸른기를 띤 비파색의 유약을 얇게 바른 다완), 긴카이(金海-김해의 가마에서 만들어진 다완으로 기면에 金 또는 金海라는 명문이 있고, 입 주위 한쪽만 복숭아형의 다완) 등 종류가 매우 많았다.


 


그 중 가장 훌륭한 것은 이도 다완(井戶茶碗)을 치는데, 크기가 큰 오이도(大井戶), 크기가 작은 고이도(小井戶), 약간 푸른색을 띈 아오이도(靑井戶), 이도 다완에 가깝다는 이도와키(井戶脇) 등이 있다. 특히 으뜸으로 치는 것이 그 유명한 오이도(大井戶) 다완이다. 이 명물 이도는 오늘날 등록되어 있는 것만 해도 26개나 된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명물은 일본 교토의 대덕사 고봉암에 소장되어 있는 지름 15.3, 높이 9.1㎝의 기자에몬 오이도’이다.


 


바로 오이도의 왕으로 칭해지며 이보다 우수한 다완은 없다고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이도다완(井戶茶碗)이라 불리는 기자에몬 오이도(喜左衛門 大井戶)는 일본(日本)의 국보(國寶) 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그릇은 일본인들이 즐겨 마시는 말차의 차사발이다. (말차는 일본의 전통 차를 말하며 일본과 중국은 抹茶로 표기하고, 한국은 末茶로 표기하면서 가루 녹차라 부른다.)


 


이도 다완(井戶茶碗)은 지금부터 500여 년 전인 임진왜란 이전에 경남 하동지방의 민가에서 사용되던 것으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 이직광ㆍ이경 형제가 처음으로 구워 낸 조선 막사발에서 기원한다. 고대부터 하동은 흙(고령토)이 도자기를 만드는데 적합해 가야시대(伽倻時代)에 토기문화가 꽃피었던 지역이다. 이도(井戶)라는 명칭은 처음 조선 막사발을 만든 곳이 하동 지방의 샘골이라는 곳이고, 샘골을 일본식 한자로 옮기면 이도(井戶)라 표기된다. 즉 이도 다완은 우리말로 샘골 사발이라 할 수 있다. 이도 다완인 기자에몬 오이도 다완은 조선의 가난한 민가에서 밥 공기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도 다완은 전형적인 잡기(雜器)로써, 만든 사람도 아무렇게나 만들고, 흙은 뒷산에서 적당히 캐내어, 화로에서 가져온 재를 유약으로 사용했으며, 물레는 중심이 헐렁했을것이고,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을 것이며, 굽도 거칠게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가마는 보잘 것 없었으며, 그릇에 모래가 달라붙어 있어도 그런 것에 구애 받지도 마음 쓰지도 않았던 듯하다.


 


막사발은 그릇에 금이 가면 가는대로, 옆이 터지면 터진 대로 그대로 놓아둔다. 밑으로 유약이흐르면 그것도 개의치 않고 그릇 모양만 인위적으로 만들었을 뿐, 그 다음부터는 자연에 맡겨 놓는다. 가능한 대로 인위적인 손길을 줄이려 했다. 그런데도 모습은 당당하다.


 


자연과 인공의 솜씨를 절묘하게 배합한 작품이 바로 이 막사발이다. 이것이 모조품도 없는 천하 명기 대명물의 정체이다. 평범한 밥공기에서 천하 명기 대 명물로 바뀐 데는 이 그릇의 평범함 속에 있는 자연스러움과 건강함에 있고, 그 안에 풍기는 무사(無事), 무난(無難)함의 느낌이 녹아 있어 주목을 끌게 된 듯하다.


 


기자에몬 오이도에서 느낄 수 있는 이러한 고요하고 평온한 정온(靜穩)의 아름다움이야 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며, 이런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다인(茶人)들의 마음을 지금까지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당시 기자에몬 오이도(喜左衛門 大井戶) 이도다완(井戶茶碗)은 오사카 성()과도 바꿀 수 없는 명품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대부분의 하동 샘골 사발(井戶茶碗)의 공통적인 때깔은 한민족의 피부색을 닮은 노란 살색으로, 맛깔스런 된장 뚝배기의 친숙함과 정겨움이 잘 어우러져 있는 사발이다.


 


“기자에몬(喜左衛門)”은 사람 이름이며, 그는 다케다라는 성을 가진 오사카 상인이었다.


그가 이 다완을 소유하였던 까닭으로 기자에몬 오이도(喜左衛門 大井戶)라 불리게 되었다. 명물에는 족보가 있게 마련이어서 여러 장인들을 거쳐 에도시대 마쓰에번(松江藩)의 제6대 번주였던 마쓰다이라 하루사토(松平治鄕)가 소장하다가 마침내 다완 수집에 열심이던 마츄다이라 푸마이 공의 손에 들어갔다. 당시 이것을 구입하기 위해 지불된 돈은 550량이다. 즉 대명물 부류에 들어가게 되어 푸마이 공은 1818년 아들에게 유훈을 남기기를 "천하(天下)의 명물(名物)이다, 오랫동안 소중하게 보관하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