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의 역사기행

(제11화) 연산군의 몽환적 사랑

추동 2020. 12. 3. 10:08

연산군과 장녹수

 

연산군(燕山君)은 성종(成宗)과 폐비 제헌왕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고, 성종이 승하하자 19세의 나이로 조선 제10대 임금이 되었다. 그는 12년 동안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두 번의 사화(무오사화, 갑자사화)를 일으켜 엄청난 수의 인명을 살상하는 폭군으로 군림하였고, 1만여 명의 기생을 거느리며 흥청망청 국고를 탕진하여 국가재정을 고갈시켰으며, 여염집 아내는 물론이고 신하의 아내, 심지어 큰어머니까지 욕을 보이는 패륜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임금이었다. 게다가 국립대학인 성균관(成均館)과 원각사(圓覺寺) 등을 주색잡기의 비밀 연회장으로 만들었고, 스스로 사냥을 즐기기 위해 민가(民家)를 철거하여 사냥터를 만드는 등 극악무도한 행동을 일삼는 폭군(暴君) 중의 폭군이었다.

 

연산군은 정현왕후(중종의 생모)를 자신의 친 어머니로 알고 자라다가, 성종의 묘비명과 행장을 쓸 때 자신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사사(賜死) 사건을 알게 되었고, 임사홍 등이 폐비 윤씨의 피 묻은 적삼(금삼의 피)을 보여줌으로써 피 바람이 몰아쳤다. 어머니 폐비 윤씨를 모함하여 죽게 만든 아버지 성종의 후궁 숙의 정씨ㆍ엄씨를 자기 손으로 살해하여 산야(山野)에 버리고, 할머니 인수대비를 머리로 들이받아 죽게 한 후 국법을 무시하고 3년 상 대신 25일 상으로 치르게 하였으며, 관련자 수십 명을 살해하고, 이미 죽은 한명회 등은 부관참시(剖棺斬屍) 하였다.

 

연산군을 왕위에서 쫓아낸 중종반정(中宗反正)은 연산군의 패륜 행위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당시 연산군의 큰 아버지 월산대군(月山大君)은 사망하였으나 그의 부인 박씨가 아직 젊음을 간직한 채 살아 있었다. 마침 연산군은 큰 어머니인 박씨에게 어린 세자(世子)를 돌봐 주기를 부탁하였고 이를 위해 궁궐에 들어와 있던 박씨는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채 짐승으로 돌변한 조카 연산군에 의해 겁탈을 당하고 만다. 이튿날 아침 박씨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에 있는 남편 월산대군의 묘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박씨의 남동생 박원종(朴元宗–월산대군의 처남)은 누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치밀한 준비와 포섭 끝에 중종반정을 성공시켜 누님의 원수를 갚는다. 왕위에서 폐위되어 강화도 교동으로 쫓겨난 연산군은 31세인 그 해에 병으로 죽었는데 독살설(毒殺說)이 유력하다.

 

연산군은 자신의 내면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음험한 성품이었으며 괴팍하고 변덕스러웠다. 게다가 학문을 싫어하고 학자를 좋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집스럽고 독단적인 성향이 짙었다. 연산군의 성욕을 강하게 자극하는 성감대는 뜻밖에도 여인의 목소리였고, 그 여인은 바로 장녹수(張綠水)였다. 장녹수의 말투, 노래 소리는 연산군을 혼미하게 만드는 괴력이 있었다. 그녀는 평소 예능(藝能) 방면에 재능이 있어 노래와 춤에 능했고, 특히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도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기술을 지니고 있어 자연스럽게 기생이 될 수 있었다. 기방이나 연회장에서 빼어난 노래와 춤 솜씨를 아낌없이 발휘하며 분위기를 휘어잡은 장녹수는 뭇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는 유명인이 되었는데, 이 소문이 채홍사를 통해 연산군에게 알려졌고 호기심을 느낀 연산군은 그녀를 궁궐로 부른다.

 

장녹수의 특이한 목소리와 노래 소리에 완전히 반해버린 연산군은 장녹수와 “몽환적 사랑”에 빠져들어 벗어날 수 없는 포로가 되어버렸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장녹수는 빠르게 후궁으로 책봉되어 급기야 왕비를 뛰어넘는 권세를 한 손에 쥐게 된다. 연산군과 장녹수가 단시간에 그토록 가까워진 이유는, 연산군의 음습하고 자학적인 성격과 성의식이 두 사람을 가깝게 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장녹수는 왕의 총애를 빙자하여 무절제하게 뇌물을 탐하고, 남의 재산을 빼앗는 등 사람들에게 미음을 사게 된다. 결국 장녹수는 1506년 중종반정 때 참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