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5) 신선의 집에 비유되는 궁궐 내 최고 어른의 집, 대비전 자경전
왕대비(王大妃) 전용공간
궁궐 내 최고 어른이 거처하는 대비전에는 자경전(부속전각-복안당ㆍ청연루ㆍ협경당)과 자미당(빈터)이 있다.
(가) 동조(東朝)-자경전(慈慶殿)
“어머니께 수복강녕(壽福康寧)의 경사가 있기를 염원한다”는 뜻의 자경전(慈慶殿)은 왕실의 최고 어른이며 임금의 어머니인 대비가 사시던 전각이다. 조선왕조는 임금을 낳은 왕후를 신성시했고, 따라서 임금과 왕실 가족들은 이곳을 신선(神仙)이 사는 작은 세상처럼 가꾸어 대비의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염원하였다. 자경전은 이러한 염원을 반영하여, 신선의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상징물들을 꽃담에 아름답게 조형하여 대비의 존귀함과 함께 “조선궁궐의 미학”을 대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임금이 승하한 후 새 임금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비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새 임금이 미성년인 경우에는 수렴청정을 함으로써 국정을 총괄하는 것도 대비의 몫이었다. 이때 대비는 사실상의 여왕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왕비와 세자빈의 책봉 등 국혼의 결정과 관장은 대비의 고유 권한이었다. 왕비는 남편인 임금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막강한 권력자가 되는 셈이다.
★자경전이 세워진 비화(秘話)
정도전에 의해 처음 지어진 경복궁에는 임금의 어머니인 대비의 거소가 마련되지 않았었다. 태조 이성계의 어머니 의혜왕후(추존), 정종과 태종의 어머니 신의왕후, 세종의 어머니 원경왕후 등은 경복궁 시절에는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문종의 어머니 소헌왕후는 세종 재위 중에 사망하여 대비에 오를 수 없었다. 따라서 대비전(동비)은 지어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살아서 대비에 오른 여인은 세조 왕비 정희왕후(貞熹王后)로, 그녀의 거처는 창경궁의 수강궁이었다. 수강궁은 세종이 임금에 오른 후 아버지 태종을 위해 지금의 창덕궁 낙선재 자리에 지은 전각이었다. 성종은 할머니 정희왕후(대왕대비), 어머니 소혜왕후(왕대비−인수대비), 숙모인 예종비 안순왕후(대비) 등 세분 대비를 위해 광활한 여인 궁전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창경궁(昌慶宮)이다.
원래의 자경전(慈慶殿)은 창경궁 통명전 뒤편 언덕 위에 있었는데,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전각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멸실 되어 지금은 볼 수 없다. 경복궁의 자경전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순조의 아들인 왕세자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의 추존 왕비 신정왕후를 위해 지은 전각이다.
순조 때부터 조선 조정은 세도정치(勢道政治)가 권력을 휘두르는 폐해가 시작되어 왕조가 심각한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는 상황이었고, 그로 인해 조선왕조가 종말을 맞이하는 단초가 되었다.
안동 김씨 집안인 김조순의 딸로 태어나 순조의 왕비가 된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는 헌종과 철종에 이르기까지 수렴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 세도정권의 정상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순원왕후와 안동 김씨 가문의 독재정치는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신분질서를 급속도로 와해시켜 왕조를 위기에 빠뜨렸고, 급기야 “홍경래의 난” 등 대규모의 민란을 유발시키기도 하였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익종-일찍 사망)의 추존 왕비가 된 신정왕후(神貞王后)는 풍양 조씨 만영의 딸로, 안동 김씨 가문과 풍양 조씨 가문의 세도 권력싸움의 한 축이었으나 시어머니인 순원왕후를 누를 수는 없었다. 마침 순원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철종 역시 후사 없이 승하하자, 신정왕후는 후계 임금을 지명할 권리를 쥐게 된다.
흥선 대원군은 안동 김씨 가문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으면서 근근이 어려운 생활을 이어왔는데, 이로 인해 안동 김씨 세도정권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풍양 조씨의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기다리던 신정왕후 역시 절호의 기회를 맞아 풍양 조씨의 세상을 열어야겠다고 벼루고 있었던 바, 신정왕후와 흥선대원군은 자연스럽게 의기가 투합될 수밖에 없었다.
신정왕후는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명복을 26대 임금(고종)으로 책봉하고 수렴청정을 시작한다. 또한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아들을 임금으로 올려준 신정왕후에게 보은의 표시로 경복궁에 대규모의 대비전(大妃殿)을 지어 올린다. 그러한 사연으로 경복궁의 자경전(慈慶殿)은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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