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아침, 광화문이 열리다

궁궐의 아침, 광화문이 열리다(제12회)

추동 2019. 8. 8. 17:12


(사진-13) 경회루정도전은 경복궁을 화마로부터 막기 위해 늪지대인 이곳에

큰 연못을 파고 가운데 섬에 작은 정자를 지었는데, 이후 태종은 중국 사신을

성대하게 접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곳 작은 누각을 광대하고 화려하게 중건하였다.



() 연향(宴饗)의 공간–경회루(慶會樓)



4,400여 평의 연못 위에 3개의 섬을 만들고, 그 중 가장 큰 연못 위에 282평의 2층 누각을 세워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루는 임금 전용 연향장(宴饗場)이 경회루다. 근정전에서 국가적인 경축행사가 열리면 곧이어 경회루에서 잔치가 벌어지는 것은 기본 순서였다.


 


경회루 북쪽 담 밖에는 연향의 잔치음식을 준비하는 대규모의 숙설소 터전이 상시 마련되어 있었는데, 잔치의 규모에 따라 크게는 195, 작게는 50여 칸의 임시 숙설소를 가설하고, 음식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대령숙수들이 동원되어 진미의 잔치음식을 조리하여 경회루 북쪽 만시문을 통해 연회장인 경회루로 운반했다.


 


경회루는 임금과 왕족을 비롯한 상류층 귀족 등 제한된 인원들만 참석할 수 있는 금단의 영역으로, 지금은 경회루 연못의 서쪽과 남쪽 담장이 트여 있지만 원래는 연못을 따라 2.5m 높이의 담장이 뺑 둘러쳐져 있고 담장 안쪽으로는 5~6m 높이의 버드나무가 울창하여, 밖에서는 경회루 내부를 한치도 들여다볼 수 없었던 비밀의 장소였다.


 


10대 임금 연산군을 비롯한 몇몇 임금들은 전국에서 기생들을 뽑아 올려 경회루에 장막을 친 채, 음란하고 패덕한 행위를 주저하지 않았던 쾌락의 음지이기도 했다. 원래 경회루는 전적으로 사대국(事大國)인 중국의 사신들을 극진히 접대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하는데, 일년에 수 차례씩 벌어지는 중국 사신 영접으로 인해 국가 재정이 심각하게 흔들릴 정도였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