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22

백성을 버린 임금−3
사현을 넘어 홍제원(弘濟院)에 다다르니 날이 새는지 동녘이 희뿌옇게 밝아온다. 경기감사 권징(權徵)이 쫓아와 임금 뒤에서 우산을 받치고 따라 나선다. 이제는 날이 밝아 일행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임금을 비롯하여 대신들은 모두 물에 빠진 생쥐 모양이 되었고, 뒤에서 따라오는 궁녀들도 비에 젖은 치마 저고리가 몸에 착 달라붙어 마치 나신처럼 맨몸이 드러났다. 정황 중에도 젊은 승지들은 그 모습을 놓칠 세라 정신없이 눈동자를 번뜩였다. 궁녀들이 치마를 걷어 올리고 따라갈 때 흰 속살이 유난히 눈길을 끌기도 했다. 비는 여전히 쏟아졌고 작은 개울도 물이 불어 모두 큰 내를 이루었다.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길라잡이는 얕은 곳을 찾느라 어지간히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느덧 벽제관(碧蹄館)에 도착했다.
비는 또다시 폭우로 변하여 일행은 할 수없이 잠시 머물다 떠나기로 했다. 뒤쳐진 일행을 기다리며 벽제관 안에 호상(胡床-중국식 의자)을 갖다 놓고 임금의 옷을 널어 잠시 말리게 했다. 그러나 방안이 축축하고 냉랭한지라 옷은 마르지 않았다. 얼마 후 비는 멈췄고 언제 왜적이 들이닥칠지 모르니 일행은 더 머무르지 못하고 길을 재촉했다.
피란 길인지라 일행은 조반 때가 지나도 아침을 먹을 수 없었으므로 배가 고파서 견디기 어려웠다. 젊은 관원들은 염치 불고하고 민가로 뛰어들어가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뒤져서 먹었다. 그러나 어느 집이든지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으니 먹을 것 또한 있을 리 만무했다. 빈집에 남아있는 것이라 곤 장독대에 있는 된장 간장뿐이어서 이를 물에 풀어 마시는 것이 고작이었다. 임금은 지존의 위엄을 지키느라 그런 것조차 얻어먹지 못하고 그대로 묵묵히 행렬을 따라 갈 뿐이었다.
일행에 끼어 정신없이 쫓아가던 사람들은 이제 다리가 마비될 지경이어서 더 이상 걷기도 어려웠다. 그 중 어의(御醫) 양예수(楊禮壽)는 평상시에도 다리가 약하고 병이 있어 환자를 찾아 왕진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임금을 수행하는지라 창졸간에 할 수없이 걸어서 따라가고 있었다. 평소에 그리도 아프던 다리도 이런 때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잘도 쫓아왔다. 옆에서 도승지 이항복이 그를 바라보더니 놀려 댔다.
“양 동지, 각기병에는 난리탕(亂離湯)이 제일인가 보오.”
모두들 피로에 지쳐 헉헉대며 잔뜩 찌푸리고 있는 중에도 이 말을 듣자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기로 견디기 어려운 임금도 웃으면서 조용히 한마디 했다.
“그거, 안되었구나. 말을 한 필 얻어주도록 하라.”
그제서야 양예수는 별안간 다리가 더 아파오는지 절룩거리며 엄살을 부린다.
“황은이 망극하오이다! 전하.”
얼마 후 말구종이 비루먹은 말 한 필을 구해주었고, 양예수는 감지덕지하며 말에 올라타더니 금세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혜음령(惠陰嶺) 고개에 올라서자 비는 또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장마 비 모양으로 조금 개었다가는 또 쏟아지는 것이 반복된다. 그럴 떼마다 도망가는 일행의 마음은 더욱 조여지며 압박을 느껴야 했다.
비를 무릅쓰고 파주(坡州) 근처에 도달하였으나 사람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점심을 그대로 넘긴 채 다시 길을 재촉했고, 그러는 동안 비는 더욱 세차게 쏟아져 개울이란 개울은 모두 넘쳐흐르고 길은 길 대로 진흙탕이 되어 한번 디디면 발이 빠지지 않았다. 호위하던 병사들도 어느 틈엔가 한 사람 두 사람 달아나 일행의 수는 차츰 줄어들었다.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 해질 무렵 임진강(臨津江) 오금나루에 도착해 보니 그 동안 강물이 불어 붉은 탁수가 요란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 강을 건너야만 동파역을 거처 개성으로 갈 수 있는데, 나루에는 배 한 척 보이지 않았고, 강변 주변에는 전쟁을 피해 강을 건너려는 백성들이 수도 없이 몰려들었다. 뒤에는 왜병이 쫓아오고 앞에는 큰 강이 가로막고 있으니 이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위중한 순간에 봉착한 것이다. 모두들 자포자기에 빠져 있을 때 이항복이 숨겨 논 나룻배 서너 척을 겨우 공출해 왔고, 사람들은 배를 보자 서로 먼저 타려고 아우성을 쳤다. 날은 어두워 누가 누군지 식별이 어려운 무리 속에서 누군가의 입에서 위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왜놈들이 한양에 쳐들어와 죄 없는 백성들을 참혹하게 도륙하고 있다더라.”
“아니! 벌써 해음령을 넘어 지척에서 몰려오고 있다더라.”
“우리는 다 죽게 생겼다. 배를 타야 살 수 있다. 어서 배를 타야 한다.”
임금이 탄 배, 신하가 탄 배 가리지 않고 죽기 살기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몇 안 남은 호위병사들이 임금이 탄 배로 몰려드는 백성들을 긴 창으로 가차없이 찌르고 밀어내어 급기야 몇 사람이 실족해 물에 빠져 죽는 상황이 벌어지자, 사람들이 물러서면서 비로서 배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칠흑 같은 임진강은 어디가 어딘지 지척을 가름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깜깜했기에 할 수 없이 병사들을 시켜 강변에 있는 화석정(花石亭)이며, 부락의 가옥들, 나루터 뱃사공 집까지 모두 불을 질러 뱃길을 밝히게 하였다. 뒤에 왜병이 당도했을 때 배를 만들 목재를 없애려는 뜻도 있었다. 여러 곡절을 겪은 끝에 늦은 밤중이 되어서야 임금이 탄 배가 가까스로 임진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임금이 탄 배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욕설을 퍼붓는 백성들도 여럿 눈에 띄었으나 못 본체하며 그냥 강을 건너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