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연재

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18

추동 2023. 11. 27. 05:05

 

아침이 밝아오자 부엌을 뒤져 서연에게 대충 아침을 먹인 다카하시는 조금 경계를 늘어트린 아이에게

“내 이름은 다카하시라고 해, 다카하시~. 알겠니?”

∙∙∙∙∙∙, 다카하시~?”

“그래! 맞아. 다카하시가 내 이름이야. 잘 기억해 둬, 알았지?”

서연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네 이름이 뭔지도 오빠에게 알려주겠니?”

오빠란 말에 서연은 힐끗 다카하시를 쳐다보더니 모기만 한 소리로 대답한다.

∙∙∙∙∙∙서연이요--.”

~서연? 아주 예쁜 이름이구나! --. 서연아, 내 말 잘 들어! 네 어머니는 내가 꼭 찾아서 네 앞에 데려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꼭 약속할 게, 알겠지? 그리고 오빠가 가끔씩 너를 보러 올 거야. 그때까진 아랫마을에서 지내는 게 좋겠어, 내가 데려다 줄 테니~.”

서연이 사뭇 안도하는 표정으로 다카하시를 바라본다.

이윽고 서연을 데리고 아랫마을로 내려간 소년은 후미진 어느 초가집 사립문 앞에 서더니 서연을 한참이나 응시하며 자신을 믿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는 미소를 짖는다. 그리고는 소리 없이 사립문을 열고 아이를 안으로 들여보낸다. 아이는 자꾸 뒤돌아보며 소년의 모습을 쫓는다. 문밖에서 잠시 손을 흔들던 소년은 빠르게 산 위로 사라져버린다.

 

초가집은 명이 할멈의 집이었다. 밤새 일어난 일들을 전혀 알 수 없었던 명이 할멈은 울면서 더듬더듬 말하는 서연의 예기를 듣고는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네 어미가 왜놈에게 잡혀갔단 말이냐? 그럼 네 어미가 어디로 간 것이여! 왜놈에게 붙들려갔으면 어디 가서 네 어미를 찾는 단 말이냐! 하늘도 무심하시지--. 큰 일이로다, 큰 변고여~~! 네 나이 때 어미가 천애고아가 되더니만 딸년마저 이 지경을 당하는구나, 아이구, 팔자여--! 정녕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명이 할멈은 10여년 전 순금의 어미가 죽던 날을 떠올리며

“도대체 이게 무슨 하늘의 조화란 말인가?”

한탄하며 눈을 훔친다. 순금이 왜병에게 끌려갔다면 십 중 팔구 살아있기는 틀려버렸다는 불길한 단정을 내리며, 불현듯 서연의 핏줄인 김 진사 댁을 그려본다. 그러나 서연의 생부인 큰 도령 갑수는 한양에서 무위도식에 빠져 있고, 작은 도령 갑진은 연로한 진사 내외를 봉양하며 바쁘게 반가(班家)를 이끄느라, 서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순금 모녀에게 봄가을로 양식을 보내 생활을 꾸려가도록 마음을 쓰고는 있었다. 아마도 감추고 싶지만 감춰지지 않는 혈육이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명이 할멈은 지금은 연로하여 거동이 쉽지 않고 기력이 많이 쇠잔한 상노인이 되었지만 순금 모녀의 일이라면 만사 제치고 힘을 내는 정 많은 할멈이었기에 서연의 살길을 찾아 분주히 움직였다. 당분간 서연의 집에서 함께 지내기로 하고, 우선 서연 어미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행방을 찾아보느라 노심초사한다. 서연은 엄니의 소식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질 지경이었지만, 왜병들은 이미 한양을 향해 모두 떠난 상태였고, 충주성에 일부 주둔 왜병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 들어가 생사를 알아본다는 것은 가당치 않았다. 밤 세워 이런저런 궁리를 해봐도 뾰족한 방책이 떠오르지 않자 명이 할멈은 노구를 이끌고 내밀하게 진사 댁 갑진 도령을 찾아간다. 어렵사리 갑진 도령을 만나 순금의 행방불명 사연을 털어놓으니 사색이 다된 갑진은 평소에 순금을 챙기지 못한 자책감에 가슴이 찧어졌지만, 이미 충주목 관아는 왜병에 의해 불타 없어졌고, 충주목사를 비롯한 관원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두 사라지고 없어 순금의 행방을 알아보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