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연재

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6

추동 2023. 9. 5. 17:23

 

2)

출생의 비밀−1

 

과수댁 순금(順錦)네가 살고 있는 마을은 충주 서쪽의 견문산(犬門山)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어촌으로, 마을 앞을 흐르는 달천(疸川)에서 물고기를 잡아 산 넘어 충주 장에 내다 팔거나, 산자락에 밭을 일궈 고구마 등 밭 작물을 심어 어렵게 끼니를 이어가는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이다. 그러나 달천이 휘돌고 있는 견문산 절벽 밑에는 우륵이 거문고를 타며 유유자적했던 탄금대가 있어, 주변 산수(山水)가 뛰어나게 곱고 아름다운 고장이다. 그런 연유로 마을 이름도 산수(山水)마을이 된 듯싶다.

 

마을 앞을 유유히 흐르는 달천은, 속리산 계곡에서 발원하여 괴산을 거쳐 북쪽으로 흘러가는 한강의 지류로, 오누이 전설이 있는 달래강이라고도 부르는 감천(甘泉)이다. 마을 앞 긴 강변은 속내를 감추기라도 하듯 자연 그대로의 숲이 울창하게 덮여 있어, 외지에서는 보기 힘든 오지 마을이다. 주변에는 큰 길은 물론 평야도 보이지 않아 사람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곳인 데다, 마을 앞 길쭉한 들판은 주로 늪지대를 이루고 있어 비가 오면 어김없이 범람하여 농사가 거의 불가능한 쓸모 없는 들판이기도 하다.

 

순금 네가 사는 집은 마을에서 산 쪽으로 후미진 곳에 옴팍하게 자리잡고 있는 외톨이 초가집으로, 오래 전에 저 세상 사람이 된 순금 네의 엄니 때부터 살아온 다 쓰러져가는 누옥(陋屋)이다.

 

반듯한 몸매에 또렷한 이목구비로 남성 네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순금 네를 부락에서는 과수댁이라 부른다. 오지의 산골 여인 치고는 눈에 띄게 외모가 돋보여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그녀의 특출한 미색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로 자태가 고운 여인이다. 원래는 시집 한번 가본 일이 없으니 엄밀히 따져 과수댁이라 할 수 없으나, 그녀에게는 자신을 빼 닮은 서연(書娟)이라는 열 살배기 딸이 딸려 있어 과수댁이라고 불리고 있다. 목숨이라도 줄듯 그렇게 집착하던 딸애 아비는 그녀가 열 여덟 되던 해에 아이를 뱃속에 남기고는 갑자기 소식을 끊더니 십여 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한마디로 그녀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박복하고 가련한 여인이었다. 가난이 천여(天與) 인 듯 끼니조차 때우기 어려워 척박하게 살아야 하는 밑바닥 군상들 중에, 유독 눈에 띄게 미인인 것이 그녀의 운명적 허물이었다. 팔자 사나워 억척꾸러기가 다된 이십 대 후반의 여인이었지만 그녀의 외모는 여전히 곱고 아름다웠다. 아니 아름다움을 넘어 이제는 농익은 과육처럼 풍만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런 순금 네를 주변 남정네들이 가만둘 리 없었다. 그것이 팔자인양 그녀의 주변에는 권세 있는 여러 남성들이 꼬여 들어 그녀를 괴롭히기 일쑤였다.

 

순금(順錦) 네는, 자신의 엄니와 자신 그리고 자신의 딸, 이렇게 모계혈족 3대가 대를 이어오고 있다. 3대 모녀는 특이하게도 외모는 물론, 살아가는 행적까지도 그야말로 팔자인양 판박이처럼 닮은 꼴을 이루고 있었다.

 

가난에 찌든 생활이었으나, 순금(順錦)은 열 두어 살이 될 때까지 엄니와 함께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순금(順錦)의 엄니는 억세고 부지런하여 밭일이건, 남의 집 허드레 일이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살았다. 그녀에게는 한 점 혈육인 순금(順錦)이 있었기에, 오로지 딸 만을 생각하며 힘 드는 줄 모르고 억척스레 생활을 추려가고 있었다. 더구나 순금의 엄니 집안은 지금은 멸족되어 친척 하나 없는 외로운 신세지만 원래는 낮은 신분의 가문은 아니었기에 딸애에게 떳떳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데 내심 애를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