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사랑의 요소(要素)」- 5
(제1부)
전쟁의 시작−3
일본군은 칼이나 휘두르는 오합지졸의 군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신형 무기와 고도의 전술 훈련으로 무장한 최상의 군대였으며, 반복적인 모의 공격훈련을 통해 조선의 지형과 조선군의 전술을 손바닥 보듯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조선 조정이 평가절하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대한 일본군의 단결된 충성심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그를 일본 최고의 영웅인 신성(神聖)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었다.
이러한 압도적 군세로 부산을 휘몰아친 일본군은, 잠시의 멈춤도 없이 승승장구하며 파죽지세로 양산, 울산, 언양, 밀양 등을 차례로 불 먹은 땅, 검은 땅으로 초토화시키며, 한양을 향해 진격했고, 적진의 기세에 질린 조선 군사는 대항은커녕 바람소리만 들려도 허겁지겁 도망치기에 정신이 없었다. 10일 만에 경상도가 맥없이 왜적에게 넘어가자,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던 조신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우왕좌왕 헤매기 시작했고, 민심은 더욱 흉흉해졌다. 조정에서는 조선 최고의 명장 신립(申砬)을 삼도순변사(三道巡邊使)로 봉하여 초전에 적의 예봉을 꺾으라는 왕명을 내린다. 방어군을 이끌고 충주에 당도한 신립은 자신의 특기인 기병 전술을 전개하여 일본군을 무찌르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견문산 탄금대 근처의 달천(달래강)을 뒤에 두고 배수의 진을 친다.
그러나 삽시간에 경상도를 함락한 왜군은, 무서운 기세로 상주와 조령을 넘어 충주로 밀려들었다. 왜군이 충주지역으로 침입해온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신립은 급히 말을 채찍질하여 충주성으로 달려갔으나, 한발 앞서 충주성을 점령한 왜적들이 호각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며 조선 방어군을 포위했고, 신립은 휘하의 여러 부대를 지휘하며 적진을 빠져나가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일본군은 우회작전으로 그들의 우측에 진출하여 동서에서 압도적인 세력으로 협공하여 진퇴양난에 빠지고 만다.
전의를 잃고 사면초가에 빠진 신립은 탄금대 진지로 돌아와서 종사관을 부르더니 임금께 올릴 장계를 작성하라고 급하게 지시한다.
"전하! 신(臣), 적군을 격퇴하라는 하명을 받았사오나 이를 실행치 못하는 불충을 저질렀사옵니다. 소장, 이러한 불충을 깊이 자책하오며 심히 부끄러운 심정으로 전황을 아뢰옵나이다. 신과 아군은 왜적의 진로를 차단하기 위해 목숨 건 전투를 계속하고 있사오나, 워낙 빠른 속력으로 북진하는 왜적을 막는 것은 불가할 것으로 판단되옵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왜군의 한양 입성이 임박해 보이오니, 전하께서는 속히 한양을 떠나 옥체를 보존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작성된 장계를 훑어본 신립장군은 이를 조정에 전하라고 명하고는 적진으로 돌진해서 단신으로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강가로 몰리게 되었다. 그는 항복을 하는 대신 탄금대 물속으로 몸을 던져 자결하였고, 부하들 역시 그를 따라 투신하였다.
조령과 충주가 뚫렸다는 패보가 궁궐에 당도하자 임금은 몸이 돌처럼 굳어져버린 채 좌불안석이었다. 후궁 인빈 김씨는 궁궐을 버리고 조속히 피난하지 않으면 큰 봉변을 당할 것이니 서둘러 한양을 빠져나가야 한다고 임금을 채근하고, 임금은 미간을 찌푸린 채 긴긴 숙고에 들어간다. 결국 임금 선조는 전쟁에 대한 위협을 느낀 나머지 종묘ᆞ사직을 버리고 한양을 떠나 중국으로의 망명을 결정한다.
그렇게 조선반도는 왜적의 발 밑에 짓밟히며 폐허로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