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아침, 광화문이 열리다

궁궐의 아침, 광화문이 열리다(제8회)

추동 2019. 8. 8. 16:40


(사진-7) 조선의 신분제도정도전에 의해 확립된 왕권(王權)과 신권(臣權)

공동 통치체계는 조선왕조 519년간 변함없이 존속되어 이어져 왔다.




8. 경복궁 창건의 주역(主役)


조선 건국 2년 만에 개경에서 급하게 천도한 한양에는 고려 남경(南京) 때의 연흥전(延興殿)이라는 아주 작고 초라한 행궁이 북악산 밑(현재의 청와대 인근)에 있었을 뿐 임금이 거처할 왕궁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조정(朝廷)은 태조 이성계가 거처할 새로운 왕궁을 세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는데, 12만 평이 넘는 방대한 규모의 경복궁은 정도전(鄭道傳), 심덕부(沈德符), 김사행(金師幸) 등 세 사람의 협업에 의해 10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기적적으로 완성되었다.


 


(1) 창건 주역-1, 왕을 꿈꾼 책사 정도전(鄭道傳)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에서 이성계와 정도전의 관계는 흡사 중국의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과 그의 참모 (張良)에 비유되는데, 이것은 유방이 장량을 이용해 한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장량이 유방을 내세워 자신이 원하는 한나라를 건국했다는 중국 황실의 비사를 말하는데, 정도전 역시 이성계를 내세워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왕조를 건설한 것이며, 조선 건국의 실질적인 기획자는 곧 정도전(鄭道傳)이라는 뜻이다.




이성계는 신궁(神弓)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무예에 뛰어난 무장이었지만, 그가 조선을 창업하기 위해서는 국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정략(政略)과 국정 설계에 대한 지략(智略) 등을 겸비한 책사(策士)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했고, 그런 역할을 펼친 인물이 바로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비장의 결심을 하고 함흥에 있는 동북면 도지휘사(都指揮使) 이성계를 찾아가 그 밑에서 스스로 참모가 되었고, 이성계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과 역성혁명(易姓革命–王씨 왕조에서 李씨 왕조로의 변혁)을 뒤에서 조정하여 결국 조선을 건국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마침내 그의 꿈을 이루어 나간다. 따라서 조선은 무장(武將) 이성계와 지략가(智略家) 정도전이 함께 건국한 동업국가(同業國家)와 다름없었다.


 


정도전의 꿈은 이성계를 임금으로 만들어 상징적인 존재로 내세운 뒤, 모든 국정(國政)은 자신을 중심으로 조정대신들이 맡아서 하는 강력한 신권주의(臣權主義) 국가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자신과 휘하의 관료들이 주체가 되어 국가를 통치하는 신권(臣權) 국가체계를 지향한 것이다.


 


태조로 즉위한 이성계는 나랏일을 모두 정도전에게 맡겼고, 정도전은 명실상부한 조선의 제 2인자가 되어 새 나라의 문물 제도와 국책의 대부분을 결정하며 건국사업을 주도하였다. 이후 조선은 임금과 사대부(士大夫)가 서로 협동하면서 견제하는, 특유의 국정체계를 이룩하게 된다.


 


건국초기 정도전은 임금인 태조 이성계의 상징적 권위를 한껏 드높이기 위해 경복궁의 창건에 최선을 다하였는데, 스스로 경복궁의 위치와 방향 및 규모를 정하고 궁궐공사를 진두 지휘하였으며, 경복궁(景福宮)의 명칭은 물론 궁궐 내의 모든 전각(殿閣)과 궁문(宮門) 등의 이름을 직접 지어 현판을 붙이게 하였다. 결국 경복궁은 정도전이 창건하여 태조 이성계에게 헌정(獻呈)정도전의 궁궐이었다.




(2) 창건 주역–2, 우직한 충신 심덕부(沈德符)


 경복궁 창건의 두 번째 주역은 정도전의 기획에 맞추어 경기도에서 9 5백여 명, 충청도에서 5 5백여 명 등 1만 오천여 명의 인부를 공역(公役)으로 동원하여 궁궐의 수많은 전각과 행각, 수목과 물길 등 궁궐 조경, 궁성과 궁문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건축한 현장 공사감독 심덕부를 들 수 있다.


 


심덕부는 고려 공민왕의 요동정벌 작전에 직접 출정하여 이성계를 도왔고, 특히 이성계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과 역성혁명(易姓革命)에 적극 가담하여 조선을 건국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심덕부의 다섯째 아들 심온(沈溫)은 세종 임금의 왕비 소헌왕비 심씨의 아버지이고, 여섯째 아들인 심종(沈淙)은 태조의 사위가 되는 등 왕실과의 혼인을 통하여 큰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심덕부는 한양이 조선의 도읍으로 결정된 직후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의 판사가 되어 경복궁 창건을 공사 현장에서 밤낮없이 지휘 통솔한 궁궐공사의 전설적 현장 감독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