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더미 같은 업무 속에 파묻혀 지내야 했던 일상이 퇴직과 함께 중단되면서, 하릴없는 여유시간이 부쩍 늘어났으니, 이를 어찌 보내나 하며 막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오로지 직장 일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엄격한 분위기 탓에, 취미활동이나 여가선용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시절∼∼. 당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가 무언지 알 까닭이 없었고, 따라서 남아도는 여유시간을 때우느라 "방황하는 노인"들이 이곳저곳에서 양산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은퇴 전 자신이 종사하던 분야에서 뜨겁게 전성기(全盛期)를 보내던 시절을 잊지 못한다. 당시, 우리들은 무대 위에서 뜨거운 조명을 받으며, 사회활동의 주인공으로서 환호를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은퇴 후, 우리들은 갈 곳 잃은 나그네처럼 방황하며 시간을 소일하는 신세로 전락했고, 우리가 뛰던 무대는 다른 이들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조명은 어둡게 사라졌다. 우리들 가슴에 남는 것은 극심한 상실감(喪失感)과 소외감(疏外感), 죽음을 앞두고 느끼는 두려움과 허탈함 뿐이었다. 그래서 이곳저곳 눈치 보며 혼식하고, 혼술 하며 혼자 놀 수밖에 없었으니, 거대한 커뮤니티 속에서 혼자라니, 이 얼마나 가련한 현상이란 말인가!
이럴 때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젊었을 때의 경제적 의무감에서 벗어나, 진정 자신이 하고 싶었던 취미활동을 찾아 이를 펼쳐 나가는 것이었다. 취미 활동이란 "강제성이 없는 활동으로, 정신적, 정서적인 면에서 휴식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자유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음악 감상, 사진, 서예, 독서 등 많은 종류의 개인 활동과 독서클럽, 문화재 탐방, 평생교육, 기타 봉사모임 등 동아리 형태의 취미클럽에 참여하여 가급적 혼자가 아닌 연대감 속에서 자유와 평화의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 절실해 보였다.
나는 퇴직 후, 카메라를 들고 우리역사의 살아 있는 현장인 궁궐과 문화재 등을 탐사하면서 우리역사의 내면을 확인하는데 진력했고, 이를 자료화 하기위해 "워드, 엑셀, 포토샵, 파워포인트" 등 컴퓨터 활용 기술을 습득하느라 은퇴 첫날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또한 이런 취미활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모아 "궁궐문화연구회"라는 시니어 역사모임을 결성하여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으니, 나 자신은 나름 행복한 노후를 보내오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 기회를 놓쳤더라면, 아마도 의미 없는 허송세월로 얼마나 방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