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의 역사기행

(제7화) 연애편지 쓰는 남자, 추사 김정희

추동 2020. 10. 29. 10:40

 

 

일방적인 남성중심의 조선사회에서도, 부부간에 서로를 극진히 존중하고 다정하게 사랑을 표현한 부창부수의 부부가 더러 눈에 띈다. 엄격한 사회적 통념을 깨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며 애틋한 부부애를 나눈 남녀도 있었고, 아내와 사별하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한 사내도 있었다. 양성평등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부부 사랑을 나눈 조선시대 부부이야기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那將月姥訟冥司) 누가 월하노인께 호소하여

(來世夫妻易地爲) 내세에는 서로가 바꿔 태어나

(我死君生千里外) 천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

(使君知我此心悲) 나의 이 서러운 마음을 그대도 알게 했으면.”

 

<제주도 유배시절 아내의 사별소식에 비통해 하며 지은 도망시(悼亡詩)>

 

추사 김정희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명필가이자 그림, 시와 문장, 고증학과 금석학, 차와 불교학 모든 분야에서 높은 경지를 신묘하게 깨달은 ‘르네상스적 학예인’이었다. 전설 속의 북한산비가 신라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혀낸 것도 추사 김정희이며, 흥선대원군의 유명한 난초 그림을 가르친 이도 추사다. 그러나 남과 타협하지 않는 고집불통과 거만함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후 23세에 예안 이씨와 재혼했는데, 그의 아내 사랑은 워낙 유명하여 여러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부인에게는 극존칭의 존대말로 편지를 많이 썼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아내를 배려해 언문으로 편지를 썼다는 점이다. 그는 평생 40통의 한글 편지를 남겼는데, 며느리에게 보낸 2통을 빼곤 모두 부인 예안 이씨에게 쓴 것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연인으로 알려진 기생 죽향(竹香)은, 조선에서 알려진 여성화가로는 신사임당에 이어 두번째쯤 되는 대단한 여인이다. 그녀가 남긴 그림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화훼초충첩(花卉草蟲圖帖)’을 비롯해 여러 점의 작품이 돋보인다. 도도하기로 유명한 죽향(竹香)은 시를 잘 지었고, 난초와 대나무 그림도 잘 그렸다. 추사는 그런 죽향에게 반하여 마음이 담긴 시를 서로 주고받으며 연인의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나 추사와 죽향의 소문이 아내의 귀에 들어가자 추사는 급히 변명하는 편지를 써서 아내에게 보내야만 했다.

 

“지난 번 보낸 편지는 보셨는지요….

그 사이 인편이 있었는데도 답장을 못 보았습니다.

부끄러워 아니하셨나요! 나는 마음이 심히 섭섭했다오….

그 사이에 다들 편안히 지내시고 계신지요?

당신이 계시니 나는 집안 일을 잊고 있사옵니다.

혹여 당신께선 나를 의심하실 듯 하오나,

누이 이실(李室)의 편지는 다 거짓말이오니 곧이듣지 마옵소서.

참말이라고 해도 이제 늙은 나이에 그런 일에 거리낄 것이 있겠습니까?”

 

이 편지는 추사의 나이 43살 때 평양감영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평양의 명기 죽향과의 소문(스캔들)이 아내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급히 변명하는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다. 당대 최고의 서예가 추사가 집 밖에 나와 있어도 한결같이 당신 만을 생각하고 지낸다면서 아내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너무 꼿꼿하여 유배까지 당한 선비가 유배지에서 아내에게 투정과 짜증을 듬뿍 담고 있는 편지를 쓴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지난 번 그것은 어떻고…, 시시콜콜 투정한다. 마치 객지에 있는 아들이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투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연애편지를 통해 만나는 김정희는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는 동시대인(同時代人) 같다는 친근함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