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끝없는 여정"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18

추동 2020. 10. 12. 09:01

 

(제3부)

사랑의 행방(行方)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훤칠한 미모의 여인, 옥례(玉禮)!

그녀는 두메산골 벽지에 묻혀 사는 한갓 시골 처녀에 불과하지만 외모가 빼어나게 돋보여 마치 깊은 산속에서 불현듯 내려온 선녀를 연상케 하는 여인이다. 어쩌다 그녀가 읍내 장터에라도 나타나는 날이면 많은 남정네들이 가던 길을 멈춰선 채 눈길을 보내느라 정신을 못 차린다. 전혀 윤색(潤色)되지 않은 건강미인이랄까, 아니면 자연미인이랄까∙∙∙∙. 얼굴은 청순하지만 몸매는 육감적이어서 어쩌면 차가움과 뜨거움을 동시에 발산하는 순진무구한 냉열미인(冷熱美人)이라 하는 게 맞을 것 같은 그런 여인이다.

당연히 그녀는 남심(男心)을 흔들어 놓는 그야말로 뇌쇄적 마력을 지닌 여인이다.

이런 천부(天賦)의 미모가 그녀의 생(生)을 행복으로 이끄는 약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독이 될 것인가? 혹시 많은 미모의 여인들이 파국을 맞아 박명했듯이, 그녀 역시 아름다움으로 인해 겉은 번지르르하면서도 속은 병들어 가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의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품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다.

 

누가 그 여인의 딸이 아니랄까 봐 그런 것인지, 창분(彰芬)과 그녀의 딸 옥례(玉禮)의 외모는 그야말로 찍어 논 판박이처럼 닮았다. 용모와 하얀 피부는 물론, 큰 키에 몸매까지 어느 하나 닮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빼다 박은 그대로의 모습이다. 아니, 조금 차이가 있다면 딸이 엄니보다는 훨씬 관능적이고 방종(放縱)한 몸 끼가 드러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 옥례(玉禮) 주변을 그림자처럼 싸고도는 총각이 있다.

그가 바로 순옥(順玉)의 아들 복돌(福乭)이다. 사내답지 않게 눈망울이 맑고 천진스러워 용모로 보면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그러나 체격은 제법 장대하고 얼굴에 꺼뭇꺼뭇 수염이 돋아나 있어 이미 성년에 이른 청년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의 얼굴은 인중(人中)이 길고 입술이 뚜렷하여 성격이 곧고 강직해 보이지만, 이마가 널찍하고 눈매가 서글서글한 것으로 보아 성격이 너그럽고 포용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지닌 청년의 모습을 그대로 풍겨주고 있다.

 

오누이처럼 지내온 열 일곱 살 복돌은, 두 살 아래인 옥례에게 아직 그것이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인정 때문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언제나

 

“너는 내 각시야~~, 그리고 나는 네 신랑이고~~.”

 

라며 머지않아 둘은 의당 신랑각시가 될 사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복돌의 생각은, 혼자 된 이후로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동반자가 되어 서로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함께 키워온, 그들의 엄니 창분(彰芬)과 순옥(順玉)도 같은 생각인 게 분명했다. 물론 옥례도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오라버니의 각시가 될 수밖에 없겠구나 하며, 체념 반 아쉬움 반의 심정을 품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마당에 지금부터 ‘이 사람이 내 신랑 내 각시요’ 하며 미리 얽매어 놓는 건 서로를 불편하게 할 뿐이라고 생각하여 다소는 거리를 두려고 애를 쓰고 있다. 옥례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사뭇 성장이 빨라, 체격이 웬만한 어른 몸집을 앞지르고 있는 데다, 정신적으로도 조숙하여 이성(異性)에 대한 의식 역시 남다른 욕구와 열기를 지니고 있다. 내심으로는 복돌 같은 산골 남자가 아닌 다른 세상의 남자, 더 멋진 남성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대덕산(大德山)에 터전을 잡은 눈골마을은 어느새 이 십여 가구에 오 십여 명의 식구로 불어나 비록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산중(山中) 농경에 자리를 잡고 자급자족을 이루며, 가족처럼 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신분이 낮은 평민들이지만, 그러나 누구의 속박도 받지 않는 나름의 자유지대(自由地帶)를 형성하며 차별 없이 살고 있는 샘이다.

그들 대부분은 산골 밭농사에 통달한 고수(高手) 농사꾼으로 변신해 있었고, 어떤 이는 산지(山地)에서 자라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동가리를 봐도 그것이 병고(病苦)에 효험이 있는 악초인지 아닌지를 확연히 구분할 줄 아는 고수 약초꾼이 되어 있었다.

그뿐인가? 송이버섯이나 표고버섯 재배의 고수가 있는가 하면 마을사람들을 한기(寒氣)와 칼 바람으로부터 막아주는 고수 목수(木手)와 온돌 미장이도 있어, 마치 자치적 자족도회(自足都會)를 이루고 있는 것이 연상될 정도였다. 이런 결과는 어느 한두 사람의 힘이 아니라, 창분의 억척스러운 선도(先導)와 눈골가족 모두의 피눈물 나는 고통이 합쳐져 이룬 결실이었다.

 

창분은 한동안 밭농사와 약초채취는 순옥에게 맡기고, 한약제 여상(旅商–여러 지방을 도는 행상)을 이끌고 있는 약제상 이형석(李亨錫)을 따라 함경도 일대를 주류하기도 했다. 눈골에서 생산하는 여러 산물(山物)들의 용도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제값을 받아 내기 위한 모험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약재를 짊어지고 대덕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에 부쳤던지, 월 말께 이형석을 만나 산물(山物–산에서 나는 약초나 버섯) 거래에 대해 정산(精算)할 때를 제외하고는 채취 산물을 약제가게에 넘기는 일은 주로 옥례와 복돌이 대신하고 있다. 창분은 그 동안 이형석과의 거래경험을 통해 얻은 신의와 정직을 바탕으로 한 ‘상인(商人)의 철칙(鐵則)’을 옥례에게 전수해 주느라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약제상 이형석도 산남읍에 벌려 논 약제가게는 본인이 직접 운영하고 있지만, 나이 탓인지 매달 보름이나 걸리는 여상(旅商) 일은 되도록이면 아들인 덕현(德鉉)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약제거래(藥劑去來)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