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끝없는 여정"

역사소설 "끝없는 여정"-8

추동 2020. 8. 6. 12:11

개마고원 초막

 

 

'아아~, 아니--, 이게 뭐지?'

 

어렴풋이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위에서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악--! 누–, 누--, 누구요? 비켜요!”

 

창분은 한껏 소리를 질렀으나, 입을 틀어막고 있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왠 사내가 창분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힘을 주어 벗어나려 해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까 그 반도(叛徒)의 우두머리 청년이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청년은 창분의 저고리를 풀어 헤친 채 한 손으로는 가슴을 움켜지고 있었고, 한 손은 창분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치마는 벗겨진 채 허리춤으로 올라와 있고. 속옷은 발 끝에 걸려 있어 이미 몸은 열려 있었다.

겨우 청년의 손을 입에서 떼어 낸 창분은 있는 힘을 다해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친다.

 

“비켜요! 이러지 마세요. 아, 아~! 살려주세요––!”

 

창분은 애처롭게 애원하며 필사적으로 저항해보지만, 청년의 몸집이 워낙 장대하고 힘이 거센 대다 이미 온몸이 뜨거운 욕정으로 가득 차 있어 어떤 소리도 들릴 리 없었고, 오히려 더욱 세차게 여인의 몸에 밀착하며 막무가내로 파고들기만 할 뿐이다.

아무래도 여인이 청년의 품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전혀 가당치 않아 보였다.

여인이 마지막 힘을 쏟으며 격렬하게 바둥거려보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남성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어 더욱 맹렬하게 여인의 몸을 파고들었고, 여인은 점차 기력을 잃고는 부릅떴던 눈을 스르르 감으며 자포자기에 빠진다.

기진맥진한 여인의 몸에서 마치 바람이 빠져나가듯 맥이 풀려나가는 순간이었다.

 

“아––, 악!”

 

창분의 입에서 쇳소리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녀의 몸을 예리하게 가르는 심한 통증이 온몸에 휘몰아쳤기 때문이다.

연이어 몸 속이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르면서, 몸의 중심을 향해 빠르게 응축(凝縮)되는가 싶더니, 한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짜릿한 쾌감으로 바뀌면서 황홀한 열기가 몸 속 이곳 저곳으로 퍼져 나간다. 그녀의 저항은 급속히 멈춰 섰지만, 그러나 그녀의 숨소리는 오히려 가쁘게 빨라 지기 시작한다.

 

그 청년은 경성도호부(鏡城都護府)에서 한때 군기청(軍器廳) 관원으로 종사하던 장한식(張漢植)이라는 청년이다. 나름 의리(義理)에 어긋나는 일을 보면 참지 못하고 곧잘 입바른 소리를 해대는 성격이라, 그만 도호부사의 눈 밖에 나 관아에서 쫓겨난 게 일년쯤 전이다. 그러고 보니 청년과 창분은 경성 관아에 함께 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년이 근무하던 군기청과 창분이 있던 내아(內衙)는 서로 거리도 떨어졌을 뿐 아니라, 내왕이 있을 게 없었으니 알고 지내기는 어려웠을 상 싶다. 혹여 관아의 큰 행사 때 오다가다 스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으니, 아마도 그런 연유로 안면이 남아 있을런지는 모를 일이다.

 

마침 임진왜란으로 세상이 바꿔지자, 장한식은 이를 갈던 정웅진(鄭雄珍) 부사를 잡아 한풀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냉큼 국경인(鞠景仁) 반군에 가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발이 달도록 험지(險地)를 뛰어다녀봤지만, 부사를 잡는 일이란 게 그리 녹녹하지 않았고, 거기다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다 보니 참을 수 없는 허기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

 

여러 날 쌓였던 피로와 오랜만의 포식으로 식곤증이 겹친 나머지 깊은 잠에 빠졌던 청년은, 심한 갈증을 느껴 눈을 떴는데 얼마나 잤던지 어느새 한밤중이었다.

더듬거리며 마실 물을 찾아 겨우 밖으로 나와보니 사방이 적막강산인 대다, 집을 지킨다던 젊은 처자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숨어있는 관군에게 밀고라도 할 요량으로 산 밑으로 내려간 것은 아닌가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가 쭈뼛해져서, 서둘러 산채 이곳 저곳을 뒤져봤으나 처자는 찾을 수 없었다. 더욱 긴장하여 산채 밖 여기저기에 흐트러져 있는 초막(草幕)들을 더듬어 뒤지다 보니, 건너편 언덕빼기 밑에 있는 허름한 초가(草家)에서 옅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소리를 죽여가며 불빛을 좇아 조심조심 다가가 보니 허름한 창고 초막(草幕)이었고, 안에는 흐릿하게 등불이 켜져 있었다. 건물에 바짝 다가가서 문틈으로 초막을 들여다보니, ‘이게 누군가!’ 바로 낮에 보았던 처자가 등잔불을 켜 놓은 채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닌가! 밀고를 하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싶어, 우선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다시 산채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몇 발짝 내려가던 혈기왕성한 청년은, 등잔불에 비쳐진 여인의 풍만한 몸체를 머리 속에서 지우기가 어려웠다. 그리고는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몸 속으로 달아오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걸음을 멈추고는 뻐근해지는 몸의 변화에 충동을 느끼게 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여인을 안아본 지가 벌써 몇 해인가?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건 아닌데––!’

 

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창고로 되돌아와, 문틈으로 여인의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순간, 등잔불에 비쳐진 여인의 농염한 융기(隆起)가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살며시 문을 열고는 여인에게로 다가간다.

몇 번을 망설이며 멈칫멈칫하던 사내의 조심스러운 동작이 여인의 체취를 들이마시는 순간, 야수와 같은 치한(癡漢)으로 돌변하면서 오로지 욕망을 채우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소용돌이에 빨려들 듯 여인의 몸으로 몰입한다. 정염(情炎)에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